[21토크]‘불안정한 노동시장’ 경험한 세대가 찾는 즉각적이고 분명한 정치 구호
“저 진짜 궁금해서 묻는데, 장애인들은 대체 지하철에서 왜 그러는 거예요?”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30대 남성이, 제 직업을 기자라고 소개하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화제였던 때입니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이 집회에 대해 “엘리베이터는 94% 가까이 설치됐는데 뭘 위한 투쟁이냐”라며, 장애인권 문제를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문제로 납작하게 치환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었기에 도리어 아무 답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날 이후 속으로 몇 번이나 ‘뭐라고 답했으면 좋았을까’ 되뇌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집 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그래서 집 안의 모습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던 중년 남성, 어릴 때 장애인 보호기관과 흡사한 역할을 하는 종교시설에 들어간 뒤 중년 넘어서까지 반쯤 노예처럼 살아야 했던 남성, ‘발달장애 자녀와 동반 자살한 부모’ 뉴스를 보면 “너 죽고 나 죽자”며 살해 위협을 했던 가족이 생각난다는 여성. 이동권, 교육권, 돌봄 공백 등의 말은 너무 단순했습니다.
지역사회의 시선과 격리, 그로 인해 세상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두려움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제1571호 표지이야기 ‘이준석 너머의 청년들’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저는 앞선 질문에 답변할 기회를 다시 얻었습니다.
대선 당시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2030 유권자’ 13명을 인터뷰했는데, 한 인터뷰이가 ‘탈시설’을 말하는 전장연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잠시 망설였다가, 답변을 포기했습니다.
어떤 몸으로 태어나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달라지고,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1분 안에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장애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인기 유튜버들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
저를 포함해 대개의 사람은 타인의 삶을 잘 모릅니다.
전장연을 비판한 그 인터뷰이 는 장애인·여성 인권에 대해 물어보면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보편적 상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독 ‘전장연’에 대해선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이건 정치인에 의해 전장연이 ‘장애인 권리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사회에 폐를 끼치는 집단’으로 재기호화된 탓이 아닐까요.
인터뷰 과정에서 이준석이라는 정치인과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를 분리해 바라보려 했습니다.
전장연은 세상을 향한 불안 혹은 분노를 투사하는 대상이었을 뿐, ‘청년을 대변해주는 정치’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더 나은 정치적 선택지가 있었다면 이준석이 아닌 정치인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지금의 현상을 이렇게 분석합니다.
“사회적 안전망을 포괄하는 ‘사회적 재생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개인은 자신의 삶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오늘날 한국의 청년 세대는 이런 조건 속에서 성장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했으며, 이전 세대가 당연하게 누렸던 안정성, 예측가능성, 사회적 보호를 경험하지 못했다.
”
윤 교수는 이 불안정성이 정치적 연대의 언어보다 ‘내가 겪는 위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분명한 반응’을 찾아 헤매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정치권과 사회가 이 불안정성에 주목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더 나은 청년 정치인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