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기획]사상-수행 잇는 철학자이자 무도가… 신간 ‘목표는 천하무적’ ‘용기론’ 펴내
우치다 다쓰루가 집 1층을 개조해 만든 합기도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이곳에서 그는 매일 자기 수련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친다.
ⓒSato mayuko “한국에는 두 가지 공백이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무도의 전통이다.
나는 그 세계의 가교가 될 뿐이다.
” 일본의 사상가이자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75)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책 ‘목표는 천하무적’(박동섭 옮김, 유유 펴냄)과 ‘용기론’(박동섭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이 동시에 번역 출간된 것을 기념한 강연과 행사가 줄줄이 잡혔다.
우치다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제자로 40년 넘게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연구했고, 50년 동안 아이키도(합기도·合氣道)를 수련해온 무도인(武道人)이다.
2011년 퇴직하면서 자신의 집 1층을 개조해 ‘개풍관’(凱風館)이라는 합기도장을 열었을 정도다.
학술어와 일상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한·일 양국에서 대중에게 배움의 철학, 몸의 철학을 펼친 그는 한국에서 특히 ‘선생의 선생’으로 이름 높다.
일에서 도피하려는 청년들을 다룬 ‘하류지향’과 ‘교사를 춤추게 하라’ 등 교육의 시장화를 비판한 책들이 인기를 끌면서였다.
우치다 다쓰루가 2025년 5월28일 서울 강서구 엘지아트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강인해 보이는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온몸으로 에너지를 전달했다.
ⓒIVE Corp. 무도인·독자·기자들의 환대 2025년 5월28일 저녁 서울 강서구 엘지아트센터에서 연 ‘우치다 다쓰루 내한 강연’은 감각적이고도 트렌디한 환대 속에 진행됐다.
가수 겸 ‘책방 무사’ 운영자 요조가 행사의 사회자로 등장했고, 통역은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으로 최근 ‘지극히 사적인 일본’(틈새책방)을 펴낸 나리카와 아야와 ‘세계 유일의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하는 독립연구자, 박동섭 이동연구소 소장이 함께 맡았다.
양국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옮기기보다 ‘우치다 선생을 사랑하는 한·일 팬들의 모임’에서 따뜻한 ‘문화 번역’이 이뤄지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객석엔 몇몇 언론사 취재진과 한국을 찾은 일본 독자 20여 명, 그리고 한국 독자 80여 명이 함께했다.
한·일의 무도인, 독자, 기자들이 서로 얽혀드는 융복합적인 행사였다.
우치다를 초청한 아이브코퍼레이션 송주환 대표는 “무도가이자 사상가로서 우치다 다쓰루가 보낸 신호에 응답하면서 한국의 에너지와 일본의 기술이 만나고 상호작용한다면 양국에서 ‘무브먼트’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치다와 14년 전에 인연을 맺고 꾸준히 그의 사상을 소개해온 박 소장은 “제자 겸 팬으로서 한 명의 팬이라도 더 만들고자 참석하게 됐다”고 스승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세계 유일의 우치다 다쓰루 연구자’를 자처하는 독립연구자, 박동섭 이동연구소 소장. 사상가와 철학자의 언어를 일상어로 설명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IVE Corp. 한 시간여 걸친 두 사람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마침내 우치다가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여유로운 원로 연극배우처럼 검은 배경의 무대에 올랐다.
짙은 회색 재킷 안에 새하얀 리넨 셔츠를 받쳐 입어 무심하고도 센스 있는 차림이었다.
청바지 아래 신은 캐주얼화는 앞꿈치가 닳아 있었는데 합기도 7단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몸에 밴 듯했다.
떡 벌어진 어깨,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남성 무도인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하게 움직였다.
우치다는 스스로 “나는 마르크시스트(Marxist)가 아니라 마르크시안(Marxian)”이라고 했다.
그의 스승 레비나스는 ‘마르크스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마르크시스트’라 했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마르크시안’이라고 구분했다.
우치다는 일본이 1870년께부터 150여 년 동안 이어진 마르크스 연구가 축적돼 있으며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관련 연구가 꾸준히 계속돼온 세계적으로 드문 나라라고 했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다다서재·2021)를 쓴 사이토 고헤이의 경우엔 한·일 양국에서 잘 알려진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특별히 언급했다.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회상하며 우치다 다쓰루는“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며 아쉬워했다.
ⓒIVE Corp. 마르크시스트 아닌 마르크시안 “나는 16살 때부터 마르크스를 읽었고 그 사상이 온몸에 내면화·신체화돼 있으며 일상어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말하는 ‘마르크시안’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알지 못하고는 어떤 나라의 역사도, 어떤 현대 철학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도 그에 대한 욕구 때문에 계속 나를 소환하는 것 같다.
” 그의 말처럼 최근 서울대에서 35년 만에 마르크스경제학이 수요가 없다며 폐강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르크스 강의의 부활을 촉구하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마르크스경제학 강의에 1500명 넘는 인원이 몰려 화제가 됐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는 집단 무의식처럼 마르크시안과 깊은 층위에서 닿고 싶어 하는 열정과 요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치다는 한국 독자들이 ‘무도적인 것’에도 결핍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중·일은 200년 전만 해도 대중이 ‘무도의 멘털리티’를 갖고 서로 교류하며 지냈지만 이제는 그 명맥을 찾기 힘들어 아쉽다고 했다.
우치다가 말하는 ‘무도’란 한자로 ‘닦을 수’(修) 자를 써서 한국인들이 ‘수행’(修行)이라고 일컫는 몸과 마음의 실천을 가리킨다.
신간 ‘목표는 천하무적’에서도 우치다는 “‘적이 없다’(無敵)는 것은 ‘적’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온화하고 너른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썼다.
종교로 보면 각성, 열반, 해탈에 가깝다.
한마디로 도를 닦는 일이다.
“종교적 믿음이나 수행은 모두 무한소실점을 향해 걷는 것을 가리킨다.
수행의 수(修)는 스승(亻)의 등(丨)을 보며 담담하게 걸어나가는 일을 뜻한다.
평생 지혜와 힘을 함양하는 노력엔 끝이 없다.
스승을 통해 내가 모른다는 점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
” 그는 자신의 합기도 스승 다다 히로시(95)의 이야기를 꺼냈다.
50년 전, 스승이 왜 합기도를 배우러 왔냐고 물었을 때 젊은 우치다는 ‘싸움을 잘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스승은 무지한 제자의 말에 ‘그런 이유로 합기도를 시작해도 된단다’라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그 뒤 우치다는 학문적 스승인 레비나스의 이론을 배우면서도 자신의 무지가 프랑스어나 철학 실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인간적 미성숙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하게 됐다.
“레비나스의 제자가 된 뒤 나는 기존 정보와 지식을 폐기하는 데서 공부를 시작했다.
레비나스를 읽으며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그래서 기뻤다.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길 때 스트레스를 받으면 연구자요, 기쁨을 느끼면 제자다.
(웃음) 스승이 얼마나 깊고 탁월한지 알고 나도 정진해야겠다고 느끼는 게 바로 사제간의 관계다.
” 자신의 집 서재에서 2만여 권이 꽂힌 책장을 보면서도 죽을 때까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초조함이 없다고 했다.
유유 제공 ‘천하무적’은 적대가 없는 경지 그는 도서관에 꽂힌 책을 보며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책 2만여 권이 꽂힌 자신의 서재를 보면서도 죽을 때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초조함이 없다고 했다.
75살. 오히려 담담하게 읽다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무도인, 수행자, 제자의 자세라고 했다.
삶이라는 시간성과 앎이라는 목표 앞에 그는 수행자답게 단호하고 겸손했다.
“경쟁의 반대말은 협동이나 협력이 아니라 수행, 수련이다.
일본의 선승인 다쿠안 선사의 말을 예로 들면 타인과 성패나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된다.
승부에서 지면 자기존중감이 떨어지거나 상처를 받고 의욕을 잃는다.
이기는 사람은 승리의 경험에 주저앉는다.
무도는 여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이다.
” 그가 합기도 스승에게 얻은 가장 강력한 가르침은 타인의 수련 기술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20대 후반, 남을 비판한다고 해서 본인이 훌륭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우치다는 “경쟁에서 내렸다”고 했다.
논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우치다는 날카로운 이론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논쟁을 그 누구와도 한 적이 없다.
“논쟁에서 지면 억울하고, 이기면 이긴 것에 주저앉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꾸준히 내 저서를 찾아 읽는 것 또한 승리와 경쟁에 집착하지 않는 삶에 대한 동경과 필요 때문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저 잠시 다리를 놓는 사람일 뿐이다.
오랜 기억의 저장소에서 반자본주의나 코뮌을 재생하고 발견하는 촉매제 말이다.
이것이 나의 시그널(신호)이자 무브먼트(운동)다.
” 우치다는 ‘몸의 사상가’다.
‘목표는 천하무적’에서도 무도의 본질이 돌봄이며, “타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향한 감각의 촉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썼다.
집안일의 능력은 타인이 보내는 구원 신호를 몸으로 감지하는 능력과 뿌리가 같고, 측은지심과도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타인과의 공생을 중시하지 않거나, 돌봄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고 여기거나, 한정된 자원을 서로 빼앗는 승자독식과 무한경쟁만을 가르치는 교육이 세상을 망가뜨린다고 봤다.
“교육 위기가 심각하다.
신체감각을 둔화하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호기심과 경외심을 잃어버린다.
기록과 승리 위주의 스포츠, 체육을 강조하는 일본의 학교 교육은 잘못된 신체관을 기른다.
” 행사 사회를 맡은 가수 겸 책방지기 요조. 따뜻한 환대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IVE Corp. 한국과 일본, 어떻게 만나야 할까 우치다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 피해에 대해 일본이 무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해 일본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줄기차게 사과를 요구하는 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목표는 천하무적’)이라고 그는 거듭 말한다.
극우세력이 용틀임하는 일본에서 용기 있는 발언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상당수가 일본에 대해 몸으로 느끼는 불안이 있다.
감동적으로 본 일본 영화에 우익 자본이 녹아 있다거나, 좋아하는 브랜드에 우익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는 소식 등을 전해 들은 뒤 느끼는 배신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서로의 문화를 이토록 사랑하고, 대안적인 삶과 코뮌을 공유하려는 양국 젊은이들은 어떻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는 신체 감수성까지 지배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권력 작용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신체적 공포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는 뜻이다.
수행은 어제의 나를 버리고 연속적인 자기 쇄신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거기에 집착하고, 머무는 것을 뜻한다.
나 또한 (이데올로기적 폭력과 권력에서 느끼는) 혐오와 공포가 있다.
그 고착을 어떻게 해제해나갈 것인지가 나의 테마이자 미션이기도 하다.
”  
마르크스와 무도, 한 몸에서 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