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K-PASS 지원 사업 예산 80% 수도권에서 사용, 사업 시행 못한 시군구 전국 25곳… ‘서울·속도·효율성 중심’ 교통 공약에 지역 청소년·노인은 소외
2025년 5월26일 오후 전북 진안군 주천면 산제마을 버스정류장. 이 버스정류장에는 하루 두 번 버스가 다닌다.
김명진 기자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이 되면 후보들은 줄기차게 지하철역, 기차역, 버스터미널을 찾는다.
역과 터미널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소식과 정보가 연결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선에서 제대로 된 ‘교통 정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교통 정책은 토건 정책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대다수 교통 정책은 수도권에 사는 시민들의 삶만 고려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는 대중교통 환경’이라는, 더 나은 이동권 확보를 통한 보편적 시민의 삶의 질 개선은 지금껏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과제다.
읍내 가는 버스는 7~19시, 하루 일곱 번
2025년 5월26일 전북 진안군 주천면 정류장.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멈춰 섰다.
버스 외부에는 번호가 붙어 있지 않다.
목적지만 적혀 있다.
버스마다 굳이 번호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20명 남짓 탈 수 있는 이 버스는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오직 진안읍내로만 향한다.
인구 2만4천 명의 진안군을 이루는 11개 읍·면 중 하나로 인구가 1400명 남짓인 주천면에서 버스를 타고 진안읍내로 갈 기회는 그렇게 하루 단 7번뿐이다.
아침 7시15분에 주천면에서 진안읍내로 가는 첫차가 있고, 저녁 7시에 진안읍내에서 주천면으로 돌아오는 막차가 있다.
주천면에 사는 조남훈(17)군은 진안읍내에 있는 한국기술부사관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그가 바깥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하루 일곱 번의 버스 탑승 기회뿐이다.
특히 고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반드시 아침 7시15분 첫차를 타야 등교가 가능했다.
다음 차는 아침 8시가 훌쩍 넘어야 온다.
주천면에서 진안읍내까지는 버스로 40여 분이 걸리는데, 첫차를 놓치면 8시30분 아침 조회 시간에 맞춰 교실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최근에야 진안군의 지원으로 같은 방향의 학생 여러 명과 합승해 이용하는 등하교 택시를 타게 됐다.
조군은 도시에 사는 또래들과 달리 저녁 전엔 반드시 주천면으로 돌아와야 한다.
저녁 시간에 친구들과 피시(PC)방이나 노래방에 간다거나 저녁을 함께 먹는 일, 학원에 다니는 일 같은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다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전주, 대전에라도 가면 막차 시간을 더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
전주나 대전에서 최소한 오후 6시에는 출발해야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다.
“늦게까지 놀고 싶은 날도 있지 않으냐”는 한겨레21의 질문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마음이 있어도 버스 시간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을 다시 접어요.”
조군은 그나마 주천면의 행정복지센터(옛 면사무소)와 집이 걸어갈 정도로 가까워 사정이 나은 편이다.
면 중심지보다 더 깊숙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하교한 뒤로는 대중교통을 타고 밖으로 나올 방법이 거의 없다.
한겨레21이 주천면 마을 중 한 곳인 ‘산제마을’을 확인해보니, 이 마을에는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 2대만 있었고 오후에는 버스가 아예 없었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이를 두고 “진안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웬만한 기초 시군은 다 비슷하다”고 말했다.
전국 법정리 47.9%가 대중교통 취약·사각 지역
실제 2024년 5월 현재 전국 17개 시도 210개 시군구의 ‘케이(K)-패스’(대중교통비 환급 지원 사업) 현황 자료를 보면, ‘경기 안성시·양평군, 강원 양구군· 정선군·고성군, 충남 예산군·계룡시·당진시·청양군, 경북 의성군·울진군·영덕군·봉화군·영양군·청송군·청도군·예천군·울릉군, 전남 구례군·장흥군·보성군·강진군·영암군·영광군·완도군’은 아예 K-패스 사업을 시행조차 하지 못했다.
김 센터장은 “중앙정부에서 K-패스 예산을 지원받더라도 환급해줄 교통수단이 없어 대중교통 이용 자체가 없다보니 예산을 다 못 쓰는 지방자치단체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진안군에서 중학생, 고등학생 세 자녀와 함께 사는 임준연 고원예산공작소장은 “어느새 아이들이 교통 불편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돼서 안타깝다.
이곳에선 뭔가를 배우려고 해도, 친구들과 축구를 늦게까지 하고 싶어도 교통 때문에 어렵다”며 “특히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문제가 지속되는 것은 (선거에서)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교통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지역 간 교통 격차다.
K-패스 이용의 80%가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지하철은 수도권 중심으로 일부 광역시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이 밖의 지역에선 이용할 대중교통이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 현황조사’는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2022년 기준 전국 시내버스는 8255개 노선, 3만6015대인데 이 가운데 군 단위 지역을 이동하는 농어촌버스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140개 노선이다.
하지만 운행 대수는 단 2287대로 전체의 6.3%에 불과하다.
지역별 버스 배차시간에도 차이가 난다.
서울은 10.1분, 부산 12.8분, 인천 15.2분 등 도시 지역 배차시간은 최대 15분 정도다.
그러나 전남 55.4분, 경북 70.7분, 강원 71.1분, 충남 66.6분 등으로 조사됐다.
전국 1만5169개 법정리 가운데 47.9%가 대중교통 접근 취약 또는 사각 지역이다.
행정구역의 기초가 되는 마을의 절반가량이 대중교통 사각지대인데,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는 한 번도 가시화되지 못했다.
이런 실태는 지역의 청소년뿐 아니라 노인과 장애인·임산부 등 교통 약자를 더욱 소외시킨다.
이동권은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 가운데 하나다.
지역 거주자가 병원 등 필수시설을 이용해야 할 때 특히 교통 취약 계층일 경우 가족이나 주변인의 운전 도움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지역 교통의 구조로 고착화하고 있다.
저상버스 도입 같은 논의조차 수도권의 쟁점일 뿐, 버스 운행조차 쉽지 않은 지역에선 이는 사치에 가까운 바람이다.
진안에서 만난 보행이 어려운 장애인 이규홍(57)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안에서 산 지 26년 됐는데 버스를 한 번도 못 타봤어요. 휠체어로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없어서요. 장애인 콜택시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해서 딱 한 번 탔어요. 그때 일이 있어서 진안읍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면까지 왔어요. 면에서 마을까지 가자고 하니 택시 기사가 난감해하더라고요. 결국 아내 차로 갈아타고 집에 왔죠.”
이씨의 딸도 출산할 때 교통 문제를 겪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서 우리 딸도 애를 낳을 때 전주로 다녔다”며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니 사위가 운전해서 10개월간 전주(1시간~1시간30분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30분 도시’ ‘메가시티’ 공약의 그늘
이러다보니 대부분의 지역에선 가까운 큰 도시보다 차라리 서울로 가는 게 빠르다는 말이 나온다.
전북 무주군에 살며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를 펴낸 저자 양미씨가 꼽은 시골의 가장 큰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양미씨는 “의료·교육 등에 대한 공공성 논의는 있지만 대중교통의 경우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시골에서의 교통권, 이동의 불편함은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예 없는 주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교통·지역 활성화 공약이 나오지만, 읍·면 단위의 교통권 해소를 풀어줄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청년·국민·어르신 패스 3종 도입으로 국민 교통비 절감, 5대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권역별 광역급행철도 건설’ 등을 공약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지티엑스(GTX) 전국 5대 광역권 확장, 65살 이상 고령층 비출퇴근 시간(오전 9시~오후 5시) 버스 무료 이용’ 등을 주요한 교통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케이티엑스(KTX)와 에스알티(SRT)를 통합하고, 저가 고속철도(LCC)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세 후보 모두 실제 정밀한 데이터나 지역별 분석에 따라 대중교통의 취약성과 접근성을 개선하기 보다는 ‘서울 중심, 속도 중심, 효율성 중심’의 접근을 했다.
지역의 경우 교통권의 보편성을 확대한다기보다는 지역별 광역 개발 공약으로 성장 비전 제시에만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반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기후위기와 지역 교통 불평등 해소를 담은 교통기본법을 제정하고, 수도권 5만원, 비수도권 3만원 정액 정기권으로 ‘진짜 K-패스’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한국기술부사관고등학교 조남훈 학생이 2025년 5월26일 오후 전북 진안군 주천면행정복지센터 버스정류장에서 진안읍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김명진 기자
거대 양당의 이런 접근법은 대선 때마다 누적되면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수도권에 교통 인프라가 더욱 집중되고 있다.
표가 있는 곳에 정책이 있고, 정책 수요가 있는 곳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이 이어지면서, 지역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한다며 추진됐던 토건의 탈을 쓴 광역 단위 교통 정책들은 역설적으로 지역에서 서울로 접근하는 시간만 줄여놨다.
이 때문에 되레 지역의 쇠퇴와 지역 내 대중교통의 취약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환원되고 말았다.
‘30분 도시’ ‘메가시티’ 같은 담론들이 교통 정책을 지배할 때 어떤 지역들은 최소한의 이동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보편적 권리여야 할 이동권을 개인이 각자도생으로 해결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지역 교통권은 ‘각자도생’할 문제?
지역 내 이동이 어려워진다는 것,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나가기 불편해진다는 것은 지역 소멸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전조 현상일지 모른다.
교통권 문제로 보면 국토 절반이 그 대상지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조군은 대선에서 대도시와 수도권의 최신 기차·지하철, 버스 등만 정책 의제화되고 주목받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사는 진안군이 ‘섬’처럼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몇 분이면 왔다 갔다 하는데, 여긴 점점 더 고립될 것 같아요.”
버스가 없어 예산도 못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