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 국제통상법원 “무효·영구금지”… 최종심까지 기한 없는 ‘일단정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로 이름 붙인 2025년 4월2일 전세계를 상대로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미국 연방 국제통상법원은 5월28일 트럼프 대통령의 고율관세 부과 명령을 무효화했다.
AFP 연합뉴스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차별적 고율관세 부과가 위법·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25년 7월9일로 예고했던 고율관세 시행 시점도 상당 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항소했다.
통상무역법 301조(슈퍼 301조)를 동원해 고율관세 부과를 밀어붙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좌충우돌 통상정책으로 세계 경제가 바람 잘 날 없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법원이 있다.
일찍부터 뉴욕은 전세계에서 수입한 상품이 몰리는 미국에서 가장 바쁜 항구였고, 통상과 관련한 법률 다툼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1926년 설립된 연방 관세법원이 연방 국제통상법원(CIT)으로 확대·개편된 것은 1980년의 일이다.
당시 하원 법사위원장이던 피터 로디노(민주당) 의원은 국제통상법원 설립 취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수입 거래와 관련한 연방기관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 또는 법인은 여타 연방기관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본 개인 또는 법인과 마찬가지로 사법적 검토와 구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
대기업 몸 사릴 때 5개 중소기업 소송 제기
국제통상법원 쪽 자료를 보면, 법원의 관할 지역은 미국 전역이다.
다루는 사건에 대해선 “수입 거래 및 국제통상에 영향을 끼치는 연방정부의 조치 등과 관련해 발생하는 민사소송을 관할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2일(현지시각) 이른바 ‘해방의 날’에 전세계를 상대로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내세운 법률적 근거는 1977년 입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만성적 무역적자로 경제가 발목을 잡히고 결국 국가적 비상사태를 초래했다는 주장이었다.
세계 각국이 격하게 반발했다.
주식·채권·환율이 ‘3중 동반 추락’하며 미국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일주일 만에 고율관세 시행 시기를 ‘90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 무렵 뉴욕 소재 와인 수입업체 ‘브이오에스 실렉션’과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소재 배관업체 ‘제노바 파이프’ 등 5개 중소기업이 트럼프 대통령의 부당한 고율관세 부과로 피해를 입게 됐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5월11일치에서 통상 전문 변호사의 말을 따 “중소기업은 고율관세 부과로 인한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소송을 서둘렀다.
반면 대기업들은 소송전에 나섰다가 자칫 트럼프 행정부의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관세 충격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견딜 여력도 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소송전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고 일단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리건주와 뉴욕주 등 민주당이 집권한 12개 주정부도 비슷한 취지로 별도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건은 국제통상법원에서 병합해 심리하게 됐다.
국제통상법원의 재판관은 연방 상원의 자문과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재판관은 종신직이며, 특정 정당 출신이 과반이 되지 않도록 안배한다.
실제 재판관의 면면을 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임명한 마크 바넷 법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출신 대통령 3명이 임명한 재판관이 7명이다.
트럼프 대통령 등 공화당 출신 대통령 3명이 임명한 재판관도 7명으로 동수다.
사건 배당은 법원장이 한다.
단순 사건은 단독부에, 위헌 여부를 다투게 되는 의회의 조치나 대통령 행정명령 등 파급이 큰 사건은 3명 재판부에 각각 배당한다.
고율관세 사건은 3명 재판부가 맡게 됐다.
연방 검사 출신인 게리 캐츠먼 재판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임명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법무실장을 지낸 티머시 라이프 재판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임명했다.
앞서 국제통상법원 법원장을 역임한 제인 레스타니 재판관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3년 임명했다.
5개 중소기업의 법률 대리는 우파 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언) 성향 공익 변호사 단체 자유정의센터가 맡았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무제한적 관세 부과권 위임은 위헌”
“국제비상경제권법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실제 해당 법률에는 ‘관세’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관세 부과는 의회의 권한이다.
(…) 의회는 입법부의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할 수 없다.
입법부의 권한 위임에 대한 헌법적 제한이 있다면, 행정부가 사실상 무제한적 권한을 행사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일으킨 이번 사건에 적용돼야 한다.
”
연방정부가 피고인 사건의 송무는 법무부가 맡는다.
법무부 쪽 변론 요지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해왔다.
의회는 외교 문제와 관련해 행정부에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해왔다.
둘째, 대통령은 통상 규제를 통해 국가안전을 보장해왔다.
셋째, 국제비상경제권법 입법을 통해 의회는 비상 시기에 수입 규제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비상사태 선포는 정치적 문제로 법원의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
넷째, 대통령이 이번 소송에서 패소하면 무역정책이 혼란에 빠지고 미국과 교역 상대국 간 협상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연방의회에 부여된 권한을 규정한 미국 헌법 제1조 8항의 1은 “합중국의 채무를 지불하고, 공동방위와 일반 복지를 위해 조세, 관세, 공과금 및 소비세를 부과 징수한다.
다만 공과금 및 소비세는 합중국 전역에서 동일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1조 8항의 3은 “외국과의, 주 상호 간의, 그리고 인디언 부족과의 통상을 규제한다”고 돼 있다.
관세를 부과하는 권한도, 외국과의 통상을 규제하는 권한도 모두 연방의회의 고유 권한으로 못박은 게다.
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5월28일 재판관 3명 만장일치로 내놓은 49쪽 분량 판결문에서 이렇게 판시했다.
“무역적자는 국제비상경제권법이 규정한 비상하고 예외적인 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당 법령이 대통령에게 전세계적, 보복성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
해당 법령은 대통령의 조세 부과 권한을 특정 시점과 특정 방식으로 제한한다.
의회가 무제한적 관세 부과권을 대통령에게 위임하는 건 위헌이다.
(…) 고율관세 부과 명령은 무효이며, 그 집행을 영구적으로 금한다.
”
트럼프, ‘슈퍼 301조’ 카드 꺼낼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선출되지 않은 재판관들이 국가 비상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을 결정해선 안 된다”고 비난했다.
법무부 쪽은 즉각 연방 순회항소법원에 항소했다.
최종심은 연방대법원이 맡게 된다.
법정 다툼이 상당 기간 이어질 터다.
일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미국의 무역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슈퍼 301조’를 근거로 고율관세 부과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반면 “애초 국제비상경제권법을 근거로 내세운 이유는 무제한적 고율관세를 전면적으로 부과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법률로는 같은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두 가지는 분명해졌다.
고율관세 시행 유예 기간은 연방대법원의 최종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한 없이 연장됐고, 협상장에서 애가 타는 건 트럼프 행정부란 점이다.
꼬이기만 하던 트럼프의 ‘관세 전쟁’, 결국 법원에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