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그레식 지역의 응기픽 쓰레기 선별장 옆에 만들어진 쓰레기산에서 유윤씨가 쓰레기를 헤치고 있다.
유혜민 감독 제공 “이츠 오케이(It’s okay).” “몸은 괜찮냐”는 물음에 우마미씨(52)가 답했다.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사는 그는 오전 3시에 일어난다.
두 아이와 남편의 밥을 차리고, 기도하고, 집안일을 한 뒤 오전 7시까지 일터로 간다.
그는 지역 쓰레기 선별장에서 일한다.
인도네시아는 종량제 제도가 없고, 분리 배출 시스템도 미비하다.
음식물, 농사 부산물, 비닐봉지, 유리, 페트병 등이 뒤섞인 쓰레기 더미를 트럭이 쏟아낸다.
그는 악취 나는 쓰레기를 뒤져 종이상자, 페트병 등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골라낸다.
마스크도 안전화도 안전장갑도 없다.
회색 천장갑만 끼고 일하는데 일이 끝날 때면 장갑이 축축해진다.
처리 가능한 용량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가 선별장으로 오기 때문에 선별장 구석에서는 종일 쓰레기를 태워 없앤다.
우마미씨는 그 연기를 마시며 일한다.
하루 8시간, 주 6일 일하고 받는 월급은 200만루피아(약 17만원)다.
지난 4월 말, 개발도상국의 쓰레기 문제와 쓰레기 선별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건강을 취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다.
선별장에서 일하는 여성 4명과 매립지에서 일하는 여성 1명을 만났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일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다.
그런데 모두 ‘괜찮다’고 했다.
쓰레기를 만지며 유리나 못에 자주 찔린다는 사미아씨(52)는 “행복하다.
즐기면서 일한다”고 했고, 매일 쓰레기산에서 땡볕 아래 페트병을 줍는 유윤씨(40)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나는 인도네시아어도 못 하고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쓰레기 문제도 초짜다.
그런 내가 이름, 나이, 일과 등 몇 가지를 묻는다고 먼 나라 쓰레기 노동자들의 삶에 닿을 순 없었다.
영어 통역을 통해 더듬더듬 그들에게 질문하며, 이대로 그들 이야기가 ‘괜찮다’고 요약되는 건 아닐까 목뒤가 서늘해졌다.
출장이 끝나갈 때쯤 종아리에 발진이 돋아난 걸 알게 됐다.
한 주가량 선별장과 쓰레기장을 다니며 플라스틱 태우는 연기를 마신 탓 같았다.
손끝 피부도 벗겨지고 있었다.
선진국에서 수입한 쓰레기 더미를 맨손으로 딱 하루 뒤졌을 뿐인데 그랬다.
그때 느꼈다.
이 속에 사는 이들이 괜찮을 리 없었다.
선진국 사람들은 물건을 과잉으로 사들인 뒤 필요 없는 것은 분리 배출하며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집에서, 우리 동네 길거리에서 치워졌다고 쓰레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생산된 플라스틱 중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어딘가에 남아 있다.
매립지에 묻혔거나, 바다로 흘러갔거나, 소각돼 유해물질이 됐거나, 다른 나라로 수출돼 누군가의 마당에 쌓여 있다.
쓰레기가 향하는 곳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이고 쓰레기 노동은 대부분 가난한 이들, 그중에서도 여성들 몫이다.
쓰레기가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과 아이들에게로 향하는 과정은 ‘흔쾌히’ 이뤄진다.
선진국은 노동력이 비싸고 환경 규제가 많다.
개발도상국은 이 국가들에서 쓰레기가 섞인 자원을 싼값에 사들인다.
자원을 값싼 노동력으로 분류하고 남은 건 태운다.
플라스틱을 태울 때 나오는 유해물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아 한국이라면 문제가 될 일이 여기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 삼지 않을 곳으로, 괜찮다고 말할 사람들에게 쓰레기는 흘러간다.
“어쩌겠음. 강제로 준 것도 아니고 돈 받고 받아들인 건데.” 다녀와서 쓴 기사에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렸다.
칼 들고 협박하지 않으면, 강제가 아니면 그래도 되는가. 그 말로 문제의 존재를 지울 순 없다.
문제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처럼 거기서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쓰레기는 남반구로 흐른다[꼬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