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7월 19일은 2023년 경북 예천에서 무리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의 2주기 기일이다.
지난해 1주기 기일엔 곳곳에 차려진 분향소와 추모제에 채 상병 사망 책임 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의 발길이 줄을 지었다.
기일을 열흘 앞둔 7월 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여파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은 파면됐고, 특검이 출범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제기된 의혹은 하나둘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인 만큼 2주기를 맞아 특집 기사를 준비하는 언론인들이 문의를 해온다.
어이없고 안타까운 참사였던 만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어떤 규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지, 또는 사건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접근법을 조금 달리해야 하지 않을지 조심스레 의견을 건넨다.
군에는 복잡다단한 규정과 지침이 매우 많다.
규정과 지침을 장병들에게 전파·주지시키기 위한 교육도 많다.
대민 지원이나 안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가 많이 생기는 영역일수록 규정과 지침이 복잡하게 갖춰져 있다.
즉 제도가 부족하거나 이상해서 채 상병이 순직했다고 진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상류에서 댐을 방류하는데 하류에서 사람이 직접 물에 들어가 흘러 내려오는 실종자를 식별하고 건져내는 무모한 작전이 규정과 지침으로 금지해야만 일어나지 않을 일인가? 정말 규정에 ‘물에 들어갈 때는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라고 못 박아 두지 않으면 물속에 사람을 들여보내면서 안전 장구를 갖추는 일이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보완이 필요한 것은 당연히 다듬고 고쳐야겠지만, ‘제도의 미비’가 모든 사건·사고의 근본 원인이나 재발 방지의 방향이 돼선 안 된다.
벌 받을 사람의 죄과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게 재발 방지의 첫 단계다.
이 과정에서 제도의 미비가 발견되면 그걸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 재발 방지 대책이다.
규정과 지침만 강조하다 보면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착시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러한 착시현상은 보통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막기 위한 용도로 의도적으로 동원되곤 한다.
지난해 국방부는 무리한 수중수색의 진원지로 지목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수사를 가로막아 놓고, 재발 방지 대책이랍시고 대민 지원 관련 훈령의 풍수해 지원 가능 영역에서 실종자 수색, 인명 구조를 뺐다며 생색을 냈다.
그러나 지휘관의 공명심과 무리한 작전 지시로 인한 사고는 비단 실종자 수색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이 사건 문제 해결의 본질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인데, 그건 못 하게 해놓고 변죽만 울려댄 꼴이다.
우리 군은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규정, 지침 정비’로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려는 유혹에 곧잘 빠지곤 한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벌 받아야 할 사람의 죄과를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이야말로 피해갈 수 없는 재발 방지의 첫 단계다.
이 과정에서 제도의 미비가 발견되면 그걸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 재발 방지 대책이다.
채 상병 특검 수사의 본령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2주기를 맞아, 이제는 모쪼록 고인이 안식할 수 있도록 분명한 진상 규명을 기대한다.
재발 방지, ‘제도 개선’이란 착시[오늘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