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경기도 군사분계선 너머로 북한군 초소가 보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1. MDL 국경선화 북한군은 2023년 12월 30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남북 단절’ 지시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전방에서 국경선화 및 요새화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까지 북한군은 최전방 MDL(군사분계선) 인근 6곳에서 하루 기준 수천명 병력을 동원해 도로와 교량 설치, 지뢰 매설, 나무 제거(불모지화), 콘크리트 방벽 및 철조망 장벽 설치 등 국경선화 작업을 했다.
북한군은 대전차 방어벽도 북방한계선 북한 지역에 설치했다.
앞서 북한군은 총참모부 보도문을 통해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대한민국과 연결된 북측 도로·철길을 완전히 차단하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을 건설해 ‘요새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2. MDL 침범 북한군은 최근 1년간 MDL 국경선화 및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MDL을 11차례 침범해 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7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북한군은 지난해 6월 이후 MDL 인근에서 총 11차례에 걸쳐 지상 도발을 반복했다.
MDL 침범 지역은 경기 연천과 강원 철원·화천·인제·고성 등이다.
MDL 침범 사례를 월별로 보면 지난해 6월(4회), 8월(1회), 9월(2회), 10월(2회), 올해 4월(2회) 발생했다.
합참은 이 가운데 작전 상황 등을 고려해 3건만 공개했다고 밝혔다.
#3. MDL 푯말 합참은 북한군의 MDL 침범 행위 대부분이 2015년 목함지뢰 사건과 같은 계획된 도발보다는 ‘실수’라는 쪽에 무게를 뒀다.
MDL에는 철책이 없고 푯말로 경계를 표시하는데 풍화로 인해 잘 식별되지 않는 푯말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분석이었다.
MDL 표식은 동서 248㎞ 구간에 100~300m 간격으로 박혀 있는 푯말 1292개다.
휴전 이후 풍화로 푯말을 식별하기 쉽지 않고, 북한군이 푯말과 푯말 사이 MDL을 구분하기 힘든 구간에서 MDL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게 합참의 평가다.
지피에스 vs 글로나스 문제는 북한군이 서부전선 일부 구역에서 북방한계선 부근이 아닌 MDL 3~4m 남쪽을 침범해 장벽을 설치했다는 의혹이다.
전방 감시부대에서는 북측의 MDL 침범 장벽을 상부에 보고했으나 합참에서는 특별한 대응 지침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는 남북을 가르는 MDL 푯말과 푯말 사이 군사분계선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남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고려된 측면이 있다.
국군과 북한군이 사용하는 위성항법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군은 미국이 개발한 ‘GPS’(지피에스)를, 북한군은 러시아가 만든 ‘GLONASS’(글로나스)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지점의 정확한 좌표를 놓고 지피에스와 글로나스가 각각 다르게 가리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과거 9·19 군사합의에 따른 남북 GP(감시초소) 철수 때 발생했다.
남북은 2018년 12월 시범 철수가 계획된 GP에 대한 상호 현장검증을 위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만나는 위치를 놓고 남측의 지피에스 좌표와 북측의 글로나스 좌표가 달라 만나는 지점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온 것이 황색 수기였다.
당시 남북은 가로 3m, 세로 2m의 대형 황색 깃발로 현장검증반 반원들과 상대측 안내요원들이 만날 군사분계선 지점을 표시했다.
그런 후 남북 검증요원들은 임시 통로를 통해 각각 상대 측 현장검증 GP로 이동했다.
풍화로 인해 잘 식별되지 않는 푯말도 늘어나고 있다.
남측은 푯말을 찾기 힘든 지역의 경우 유엔사가 1953년 작성한 군사지도를 참조해 MDL을 구분했다.
그러나 축적 지도상에 그어진 선 하나가 실제 지형에서는 폭이 50여m나 돼 구분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엔사는 1953년 이후 65년 만인 2015년 MDL을 표시한 군사정밀지도를 다시 작성했다.
그러나 이 역시 10여년이 지나 휴전선 일대 지형이 변화하면서 정밀하게 현장을 반영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다 북한군은 위성항법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어림짐작으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우발적으로 MDL을 침범할 소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은 그때마다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해야 하지만 북한군이 애매하게 MDL 부근에서 작업을 하면 남북 간 우발적 군사 충돌을 우려해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 6월 13일 경기 연천군 비룡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초소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유엔사에 왜 통보했나 북한군은 지난 6월 25일 유엔군사령부에 통신선을 통해 MDL 일대 방벽·장벽 설치 등 단절 작업 재개를 통보했다.
북측은 유엔사에 새 철책 설치 등 DMZ(비무장지대) 내 작업에 대해 ‘경계선 확장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군은 지난해 12월쯤 작업을 잠시 멈췄다가 올해 4월부터 MDL의 국경선화 작업을 재개한 상태다.
국방부는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북한의 통지는 남북 긴장 완화와 관련된 의미 있는 메시지로 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작업 재개 통보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고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촉구하는 등 일련의 대북 유화 조치 영향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과 맥락을 같이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측과 소통을 재개할 수 있다는 신호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내놓았다.
그러나 북한이 유엔사에 MDL 일대 작업 재개를 통보한 것은 정확한 군사분계선 구분이 애매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측의 군사적 대응을 유엔사가 제어해달라는 측면이 커 보인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 때인 지난해 10월 남북 연결 경의선·동해선 일부 구간을 폭파하기 직전에도 유엔사에 관련 계획을 통보했다.
북한은 전선 지역의 ‘국경선화’, ‘요새화’ 작업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남측은 이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는 형편인 데다 요새화 과정에서 북한군이 MDL을 넘는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1년 동안만 해도 11차례나 MDL을 침범한 사례가 이를 반증한다.
또 북한이 주장하는 MDL 라인과 남측이 주장하는 MDL 라인이 서로 다를 수 있어 방벽 및 장벽 설치 작업이 우발적인 남북 간 군사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북한군 방벽, MDL 3~4m 남하해 설치” 의혹[박성진의 국방 B컷](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