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인간관계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진다.
직장인의 대부분은 높은 사람 가까이에 가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승진해야 하고, 승진하기 위해 부단히 높은 사람 눈에 띄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사람 눈에 띌수록 그 사람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가까워진 만큼 높은 사람의 기대 수준이 올라가고, 그것을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회장 눈에 들기 위해 가까이 갔지만, 그로 인해 회장의 눈 밖에 날 확률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까이 가서 회장의 인정을 받으려고 해야 하나, 멀찌감치 떨어져 자신의 존재를 모르게 해야 하나. 참으로 난감하다.
이런 관계의 딜레마는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인 게 ‘고슴도치 딜레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처음 언급했다고 전해지는 이 말의 내용은 단순하다.
추위에 떨고 있는 고슴도치들이 몸의 열기를 나누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들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가시에 찔리므로 가까이 가지도, 멀리하지도 못하는 곤란한 형편을 의미한다.
결국 인간관계는 딜레마의 연속
우리는 관계 안에서 위로받고 성장한다.
애정과 신뢰도 관계 속에서 싹트고 돈독해진다.
하지만 관계는 상처도 안겨준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이해가 깊어져 좋아진다.
그 사람이 다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로 인해 반감이 들지 않는다.
관계는 점차 깊어지고 상대에 대한 호감도 올라간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이런 호감과 함께 상대에 대한 요구도 커진다.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알겠지’라면서 이해받고, 온전히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그러나 빈번하게 접촉하다 보면 감정이 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좋아했던 만큼 배신감도 크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같이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받는다.
직장에서도 허물없이 지내는 관계일수록 서로의 약점이 쉽사리 노출돼 실망하기 십상이다.
‘관계의 역설’이다.
친구의 치명적인 약점이 보였다.
솔직히 말했다.
그랬더니 ‘너마저 나를 몰라주느냐?’라며 야속하단다.
다음부턴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약점으로 인해 친구가 낭패를 봤다.
충고해주지 않은 내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나. 진실은 관계를 구원하기도,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친밀해질 수 있지만 상처받을 위험도 있다.
반대로, 침묵하면 안전하지만 관계가 깊어지긴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솔직함과 침묵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내 친구 박군은 늘 져주고 양보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친절을 베푼다.
매사에 머리 숙이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 사람과의 관계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양보와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 사람을 본시 그런 사람이라 여기고, 얕보기까지 한다.
그래서 받은 만큼 되돌려주는 팃 포 탯(Tit for Tat) 전략으로 호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자 했다.
그랬더니 사람이 변했다고 한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라며 하나둘씩 떠나간다.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동네 김씨는 남을 돕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다.
동네 대소사에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다’, ‘왜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느냐’라며 시비 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조용히 지냈다.
그랬더니 이번엔 왜 그렇게 사람이 무심하냐며 나무란다.
도대체 김씨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고 하는데, 어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천적이 있어야 성장한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쥐가 민첩해진 건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적은 생존에 도움이 되니 자신을 시험하는 사람을 반기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무시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곁에 두지 말라고도 한다.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에 귀 기울여야 할지 답답할 노릇이다.
나로서 존재하며 관계로 나아가는 게 해법
사람을 믿으라고 한다.
마음을 열라고 한다.
옳은 소리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원칙을 지키라고 한다.
그런데 원칙에 충실하면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라는 조언도 마찬가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며 자신의 가치에서 스스로 존엄함을 느끼라고 한다.
그렇게 했다.
남들이 겸손하지 못하다고 한다.
오만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하고 곤혹스럽다.
이런 딜레마는 또 있다.
혼자서 다짐하지 말고 주변에 말하라고 한다.
금연하겠다고, 술을 끊겠다고, 살을 빼겠다고 공언하라고 한다.
말로 약속하면 지켜야 한다는 부담으로, 그것을 이행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 자기암시 효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너는 왜 그렇게 말이 앞서느냐’라며 닦아세운다.
의존과 자율 사이의 딜레마도 있다.
너무 의존하면 자아가 약해지고 너무 자율적이면 자아가 외로워진다.
관계가 좋다는 건 의존성이 강해지는 것을 뜻한다.
의존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의존이 지나치면 자율성이 침해된다.
관계가 짐이 되고 부담이 된다.
결과적으로 한편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놓인다.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와 거리를 두고 싶은 모순된 욕구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아내와 나 사이에도 상충하는 딜레마가 있다.
아내는 내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했다.
그랬더니 중독이란다.
몰입과 중독의 차이는 무엇인가. 또 잘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해서 집중했다.
그랬더니 집착이라고 한다.
집중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인가. 아내는 내가 중간이 없다며 못마땅해한다.
나는 중간이 어디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는 늘 불안하다.
그래서 준비하고 연습한다.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안달복달한다.
아내는 매사에 자신만만하다.
그래서 준비하고 연습하지 않는다.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그렇지만 여유가 있다.
일의 완성도와 삶의 여유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양자택일이 쉽지 않다.
아내는 아낌없이 칭찬해주라고 한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며, 칭찬하면 신명이 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칭찬해줄수록 자신을 뽐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칭찬받은 수준에 만족하고 태만해서 성장이 지체될 수 있으므로 칭찬을 아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낌없이 칭찬해야 하나, 칭찬을 아껴야 하나, 이 역시 딜레마다.
홀로 자유로울 것인가, 남과 연결될 것인가. 외롭지만 자유로운 길을 갈 것인가, 부담스럽지만 함께하는 삶을 좇을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스럽지 않은 딜레마 앞에 서 있다.
딜레마를 풀 해법은 있는가.
우선 홀로 서야 한다.
홀로 서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연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자율과 연결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적정 거리를 지켜야 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감정의 거리를 건강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불가근불가원’이 방법이다.
공자께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했다.
가까이 가되 같아지려 하지 마라. 하나가 되고자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관계를 해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수준에서 공존을 꾀해야지 그 사람을 독점하려 해선 안 된다.
나의 독립이 중요하듯 다른 사람의 독립도 해쳐선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서 우리가 우리를 이루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생 앞에 놓인 딜레마를 푸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관계의 딜레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요즘 어른의 관계 맺기](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