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총재를 겸하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도쿄에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 지원 연설에 나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20일 집권 자민당의 참패를 예고한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 출구조사가 그대로 굳어지면 이시바 시게루 정부는 절체절명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 이어 참의원 선거에서도 ‘예고된 패배’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이시바 총리의 거취도 주목받고 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이날 밤 8시 참의원 선거 투표 종료 직후 공개한 출구 조사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이 27∼41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5∼12석으로 예상됐다.
두 정당이 최악의 경우 30여석, 최대로도 50석을 갓 넘기게 된다.
불과 3년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단독(63석) 과반을 넘으며 연립여당 주도의 ‘개헌 가능 의석수’를 확보한 것과 견주면 처참한 수준의 결과다.
참패 원인으로는 우선 집권 여당이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이 꼽힌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도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물가대책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정부의 고물가 대책이 장기간 먹히지 않으면서 ‘무능한 정부’라는 인식이 새겨졌다.
최근 1년새 두배 가까이 급등했던 쌀값이 대표적이다.
물가 대책으로 ‘소비세 감세’ 요구 여론이 높았지만, 정부가 재정 압박을 이유로 반대한 것도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식탁 위기에 아무것도 못 하는 무책임한 집권당”이라며 “물가 상승으로부터 당신을 지키겠다”고 이 대목을 집중 공략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최대 현안의 하나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의 관세 협상에서도 자민당 정부는 연일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일본 경제의 기둥으로 불리는 자동차 분야가 지난달 1조7071억엔(16조원) 적자를 기록하며 정부 실정이 부각됐다.
게다가 보수 성향 소수 야당들이 ‘일본인 우선’을 구호로 자민당보다 더 강력한 보수 색채를 드러내며 표를 갉아먹었다.
이시바 총리가 참의원 선거 운동 막판 총력 유세에서 “자민-공명 연립정권이 이 나라를 계속 이끌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는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일본에선 이번 선거를 ‘이시바 총리에 대한 중간 투표’, ‘정권에 대한 신뢰를 묻는 선거’로 평가해 왔다.
선거 결과에 따라 총리 교체에 그치지 않고 자민당이 정권을 넘겨줄 가능성까지 거론돼 왔다.
하지만 연립여당이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 과반을 뺏기더라도 이시바 총리가 곧바로 물러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일본에선 중의원 선거와 달리 참의원 선거 직후에는 국회 투표로 총리를 교체할 수 있는 ‘총리 지명 선거'도 없다.
자민당 내부에서 “참의원 승패와 상관없이 이시바 총리가 계속 간다”는 견해가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자민당과 비슷한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해 의회 과반을 만드는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다.
자민당이 공명당 외에 또다른 보수당에게 손을 벌려 연립정당의 틀을 확대할 여지도 있다.
보수 성향이면서 중·참의원 모두 ‘캐스팅 보트’로 안정적 의석을 갖춘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이 주요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이시바 총리가 계속 집권해도 지도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이시바 총리가 전격적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자민당에서는 지난 1989년 우노 소스케, 1998년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참의원 선거 참패 직후 사임한 사례가 있다.
엔에이치케이는 이날 출구조사 뒤 자민당 한 고위 관계자가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면 이시바 총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시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더라도 자민당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현재 유력한 ‘포스트 이시바’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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