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5월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2차 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
싱가포르/AP 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5월31일(현지시각)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해 “미국인들의 번영과 안전은 인도·태평양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며 “우린 이 지역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런 뜻을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우려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려면 한국 등이 더 많은 국방비를 써가며 자신들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혹한 ‘고율 관세’를 통해 동맹의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요구를 동시에 동맹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은 머잖아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헤그세스 장관의 이날 연설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의에서 ‘유럽은 자신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미 국방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선 어떤 입장을 보일지 밝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헤그세스 장관은 “시(진핑) 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을 위한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지시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라며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한·일·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맹들의 단합을 호소했다.
하지만 각론에선 동맹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많은 나라가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하고, 미국과 안보적으로 협력한다는 생각에 유혹되고 있다”며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덫에 걸려드는 것이고, 중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면 해로운 영향을 받게 되고, 긴장의 시기에 우리의 방위적 결정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른바 ‘안미경중’을 멈추라고 요구한 것이다.
나아가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에 쓰겠다고 서약”하는데, “북한 등에서 가공할 위협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주요 동맹들이 방위에 돈을 덜 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헤그세스 장관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에 대해 부과해온 25%의 관세를 오는 4일부터 50%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4월 초 부과된 상호관세는 미 법원의 판단이 뒤바뀌며 혼란만 키우고 있고, 철강·자동차(25%)에 이어 반도체·의약품 관세도 대기 중이다.
우리 안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도 곧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은 도대체 동맹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가.
[사설] 동맹국에 고율관세 부과하며 대중 결속 외치는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