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화학·정유업계 자구책 마련
25일 오전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LG화학과 롯데케미칼에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 가동이 멈춘 가운데 생산공정에 투입된 원료를 태우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한 화학 대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을 한다는 말이 돌자, 회사 쪽이 “사실무근”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업황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석유화학 업계의 불안이 빚은 풍경이다.
침체의 터널 속에 있는 국내 제조기업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폭탄 관세’를 피했지만, 불황이 계속되는 거대 장치 산업(대규모 설비 기반 산업)인 이차전지·화학·정유 업계가 대표적이다.
새 정부에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일 업계 얘기를 종합하면, 세 업종은 올해 하반기에도 부진한 업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중 수출 비중이 40%(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석유화학 업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로 업황 회복 시점이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가 하락은 긍정적이지만, 내수와 중국 경기가 좋지 않고 증가세였던 대인도 수출 물량도 파키스탄과의 갈등 등으로 둔화하는 게 문제”라며 “글로벌 시황 개선 전망도 애초 2028년에서 그 뒤로 지연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기업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생산한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해 합성 소재의 원료인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화학제품을 만든다.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나프타 가격이 내려 원가 부담이 줄었지만, 수익성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다.
정유업계도 연료·나프타 등 석유제품 수요 둔화와 정제 마진(석유제품 판매가격-원유 구매·정제 비용) 하락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정유사들은 원재료인 유가보다 제품 판매가가 더 큰 폭으로 내리고, 비쌀 때 사들인 재고자산의 평가 손실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고유가 시기 ‘횡재세’를 걷자는 말까지 나왔던 2∼3년 전과는 사정이 딴판이다.
이차전지 업계는 올해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전기차 판매 증가세에도 웃지 못하는 모습이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 기업의 약진으로 올 1분기(1∼3월)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중국시장 제외) 점유율 1위를 내주고, 미국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조기 폐지 가능성도 커진 까닭이다.
불황 탈출이 늦어지자 기업들도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지난달 28일 취임한 지 1년 반도 되지 않은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한 것은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그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자회사를 통해 정유·화학·이차전지 사업을 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누적 영업적자 3538억원을 냈다.
석유화학을 주력으로 하며 이차전지 자회사를 둔 엘지(LG)화학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부터 올해 1분기까지 미국 정부로부터 2조원 규모 보조금(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을 지원받은 덕분에 영업흑자를 낸 엘지에너지솔루션 실적을 제외할 경우, 본업인 석유화학 부분에서 매 분기 수백억원대 영업적자를 내고 있어서다.
알짜 수처리 사업부 매각 등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선 위기 산업의 지원·관리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김문수 후보 정도만 특별법 입법을 통한 구조조정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설비 투자 후 실제 이익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업황이 안 좋을 땐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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