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칼하이테크 해고자, 지난해 1월8일 올라 ‘두번째 여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자 박정혜씨가 지난 5월12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고공농성장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오웬스코닝지회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말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여기 있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 일을 하고 있는 저도 참 그렇고…. 기록이란 게 언젠가 누군가 검색하면 계속 남잖아요, 그게 너무 싫을 뿐이에요.”
불에 탄 공장 옥상에 오른 지 511일째인 1일, 전혀 의도치 않게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이라는 슬픈 기록을 갈아치운 소감을 묻는 말에 박정혜씨가 담담히 말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정리해고 노동자인 박씨는 지난해 1월8일 옥상에 올랐다.
그렇게 겨울-봄-여름-가을-겨울-봄에 이어 다시 여름을 맞았다.
그 긴 시간 고용을 승계하라는 박씨 요구는 변하지 않았고,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옵티칼하이테크의 일본 본사 닛토덴코의 태도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박씨가 이날 511일째 농성을 잇기까지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은 2017년 9월4일까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의 김재주 전북지회장이 회사택시 전액관리제 도입을 요구하며 전북 전주시청 25m 조명탑에 510일간 오른 것이었다.
그 전엔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해고자 차광호씨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2014년 5월27일까지 공장 굴뚝에서 408일을 버텼다.
2022년 대형 화재로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다 타버린 뒤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한 닛토덴코가 기존 엘시디(LCD) 모니터용 편광필름 생산 물량을 경기 평택에 있는 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기면서 승계를 요구하는 박씨 등 7명의 고용도 함께 옮겼다면, 박씨는 옥상에 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정리해고 뒤 니토옵티칼이 87명을 신규채용하면서, 이들도 함께 뽑혔다면 이날의 슬픈 신기록은 쓰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새 기록을 쓴 날 구미의 낮 기온은 한여름 같은 31도까지 치솟았다.
달아오른 공장 옥상의 콘크리트가 내뿜는 열기가 가둬진 텐트 내부를 견디지 못하고 박씨는 밖에 쳐놓은 차광막 그늘에서 두 번째 모진 여름을 맞았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내란 사태 이후 젊은 여성 노동자들로 구성된 ‘말벌’ 동지 30여명이 이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함께 연대의 의미로 구미역에서 3시간30분을 걸어 농성장 아래까지 찾아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번 대선에 투표조차 하지 못하는 박씨는 “아직 우리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계속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렇게 새로 쓰이지 않으면 좋을 신기록을 기약 없이 매일 경신하고 있다.
새로 쓰지 말았어야 할 기록 511일, 박정혜씨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