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 사회부국장
충북 괴산군이 만든 초대형 가마솥은 지자체 예산 낭비의 전형이다.
괴산 인구보다 많은 4만 명분의 밥을 지어 화합을 과시하고, 세상에서 가장 큰 솥으로 기네스북에 올려 관광 자원으로 쓰자는 명분이었다.
5억원을 들여 높이 2m, 지름 5m에 43.5t의 가마솥이 2005년 탄생했다.
그런데 바닥이 두껍고 위아래 온도 차가 너무 커 죽도, 밥도 안 됐다.
이미 호주에 더 큰 솥이 있어 기네스북도 퇴짜. 옮기는 데만 2억원이 든다니 그마저 포기한 채 20년째 조롱거리로 남았다.
용인 경전철 수요 부풀리기 책임 대법, “계약 당시 시장 배상해야” 선거마다 횡행…패가망신할 수도 전국 방방곡곡에 이런 어이없는 시설물이 널려 있다.
2년 전 중앙일보 예산 낭비 기획취재팀이 취재한 12곳에서만 4900억원이 낭비됐다.
조롱을 받거나 초기 투자비만 날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규모가 큰 사업은 민자 유치나 위탁 경영을 한다.
사업자를 유치하기 위해 수요를 부풀리고, 이를 근거로 손실 보상 약정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충남 예산의 내포 보부상촌은 470억원을 들여 2020년 개관했는데, 매년 위탁 운영사에 수억원을 보전해 주고 있다.
언론의 비판과 감사원 지적이 계속되는데도 이런 사업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엔 무시하지 못할 이유도 있다.
쇠락한 경제를 살리려면 뭐라도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아야 한다.
가장 쉬운 게 문화·관광 상징물이다.
도로나 철도처럼 주민 민원을 외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다간 패가망신한다.
지난주 대법원이 용인 경전철 사건 판결을 통해 지옥문을 열었다.
용인 동남부 구도심과 경부고속도로 부근 신도시까지 교통 소외지역을 연결하는 경량 전철의 첫 사업 계획은 1995년 수립됐다.
정부가 민자유치 대상 사업으로 지정했다가 외환위기로 무산됐고, 1999년 재지정을 거쳐 2013년 최종 개통 때까지 5명의 시장 손을 거쳤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4대 이정문 시장만 콕 집어 214억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가 계약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승객이 당초 예상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던 것이 적자 발생의 핵심 원인이다.
당초 하루 13만9000명이 탈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개통해 보니 9000명에 그쳤다.
이 예측은 국내 교통 분야 최고 전문 집단인 한국교통개발연구원이 만든 것이다.
전임 시장들이 만든 사업계획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수인분당선 연장 구간 개통이 예상보다 3년이나 늦어져 서울 강남 출퇴근 환승 수요를 고스란히 날린 사정도 있다.
그 사이 도로가 놓이고, 버스중앙차로와 광역급행버스가 생겨 손님을 많이 뺏겼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혼자 지라니…. 하지만 판결문에는 이 전 시장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수요 뻥튀기를 알아차렸을 것이라는 정황이 곳곳에 등장한다.
선진국 경전철은 1㎞당 승객이 4200명 정도인데, 교통연구원의 예측은 두 배인 8400명이었다.
심지어 사업자가 처음 내놓은 예상보다도 많아 협상 도중 줄이는 굴욕도 있었다.
수요가 예상의 절반에 못 미치면 최소운영수익 보장(MRG)을 박탈하는 국가 규정은 무시됐다.
나중에 비용 보상으로 바뀌었지만, 수익보장 기간도 규정보다 훨씬 긴 30년이나 인정해 줬다.
계약 만료 때까지 1조원쯤 더 물어줄 판이다.
아마 이런 조건이 아니었다면 사업자는 계약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럼 다음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자기 임기 중 계약하면 떡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욕심도 있었다.
실제 이 전 시장은 부당한 하청을 주고 1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대가로 옥살이를 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용인뿐이었을까. 내년이면 또 지방선거를 치른다.
수많은 개발 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표는 급하고, 책임은 한참 뒤에 나오니 수요라도 부풀려 그럴듯한 사업을 만들고 싶은 유혹이 손짓할 것이다.
그때 한 번쯤 용인 경전철을 타보실 것을 권한다.
계약서에 도장 찍는 자리의 무게감이 확연히 느껴질 것이다.
[최현철의 시시각각] 시장, 군수님들을 위한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