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주문하다가 쓴웃음이 났다.
그간 흐물거리고 냄새나는 종이 빨대를 강요당한 기억 때문이다.
검색해보니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금지는 문재인정부 2019년 11월에 도입됐다.
계도 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전국에 시행됐다.
시작부터 이상하긴 했다.
일단 정책의 근거가 부실했다.
전문가들은 과연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친환경적이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빨대 금지는 2019년 영국에선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됐다.
흡입 능력이 약한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장애인 단체의 반대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정부에서는 정치 캠페인처럼 밀어붙였다.
종이 빨대의 가격은 플라스틱에 비해 5배다.
그런데 커피 프랜차이즈나 패스트푸드점 대부분은 종이 빨대로 교체했다.
최근 몇 년간 커피나 햄버거 가격 상승에 분명히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런데 2024년에 ‘플라스틱 빨대 금지’가 근거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허탈한 일이다.
환경부 용역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종이 빨대의 전 과정(생산, 운송, 폐기)을 고려한 탄소 배출량은 플라스틱 빨대보다 최대 1.5배 높다.
방수 처리용 코팅재(폴리에틸렌)는 분해가 어렵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형된다.
결국 아무 사과도, 책임도 없이 조용히 꼬리를 내렸지만 이런 무책임한 정책이 있을 수 있나. 생각해보자. 온 국민이 3~4년간 돈도 더 내고, 불편을 감수하면서, 환경 피해를 가중시켜왔다는 뜻이다.
일종의 미신 같은 정책 때문에. 이외에도 당시 환경 정책은 어설펐다.
2022년 시행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앞뒤가 안 맞았다.
전국적인 혼란만 야기하고 곧바로 포기했다.
희한한 일이다.
주택 정책은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
환경 정책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산업 정책은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명료한 목표가 있다.
그런데 문재인정부에서는 주택 정책은 집값을 폭등시키고, 환경 정책은 국민 부담을 늘리며 환경을 망쳤다.
산업 정책이 세계 1위의 원전 생태계를 훼손했다.
왜 이렇게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할까. PC(정치적 올바름)류가 문제다.
자기 머릿속의 이념, 즉 ‘당위’를 ‘현실’보다 앞세우기 때문이다.
탁상공론자들은 일을 해보고 경험한 적이 없으니 용감하다.
학계에서도 이런 현상을 분석했다.
‘상징 정치(Symbolic Politics)’라는 것이다.
정책의 실효성보다는 정치적 상징이나 도덕적 우위 점유에 목표를 두는 행태를 말한다.
하버드대 머레이 엘드먼(Murray Edelman) 교수는 “정치인이 만드는 공허한 정치 구호는 현실을 가린다”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을 모르니 교조적이고 경직돼 있는 특징도 있다.
예를 들어, 카페에 잠깐 앉아 얘기하다 나가려고 주문할 때 직원이 ‘실내에선 테이크아웃잔에 마실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유리잔으로 마시다가 다시 종이컵으로 옮겨 담아 나가는 사람이 많다.
매장마다 하루 수십 건씩이다.
종이컵도 유리컵도 낭비하는 꼴이다.
잠깐 마시다 나갈 사람에겐 종이컵으로 주면 안 되나. 규정 때문에 환경 보호라는 목표와 반대로 가는 일이 벌어진다.
이념에 대한 집착과 교조주의적 경직성. 망국의 기본이다.
조선이 그래서 망했다.
‘이념 정부’에선 부동산 폭등이나 탈원전 같은 거대한 실정도 있었지만, 빨대 정책 같은 생활 속 난센스도 많았다.
실용주의 정부에서는 현장을 아는 사람이 주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실을 알면 유연해지는 게 당연하다.
[주간국장 kim.seonkeol@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9호 (2025.07.23~07.29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흐물거리는 종이 빨대 [김선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