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J에서 포즈를 취한 박경진 진주햄 부사장(좌), 박정진 사장(우).(진주햄 제공)
진주햄의 첫 해외 진출작인 베트남 합작법인(JV) 실적이 파죽지세다.
진주햄은 2018년 베트남 1위 식품기업 마산그룹과 합작, MSJ(지분 25%)를 출범했다.
출범 첫해부터 매출액 118억원으로 기분좋은 실적을 올렸던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 1354억원을 기록, 7년 만에 11배 이상 성장했다.
연 평균 48% 성장률을 기록한 셈. 수익성 면에서도 호조다.
출범 후 한번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이처럼 실적이 뚜렷하게 선전하자 MSJ는 베트남 남부 빈증과 북부 하남에 총 600억원을 투자해 연간 5만t 이상의 육류가공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 2곳을 구축, 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과연 진주햄은 낯선 베트남 땅에서 ‘K소시지’ 신화를 어떻게 썼을까.
MSJ는 베트남에서 상온 소시지를 개발, 현지 시장점유율 50%를 넘겼다.
(진주햄 제공)
형제경영 체제로 진주햄을 이끌고 있는 박정진 사장, 박경진 부사장에게 그 성공 비결을 직접 들어봤다.
‘흔들어 먹는 재미’로 현지 입맛 사로잡다
“마산그룹과 합작법인(JV)을 설립할 당시 수립한 목표치를 모두 달성하진 못했어요.(웃음) 그래도 진주햄의 첫 해외사업이었다는 걸 고려할 때 지난 7년 간 MSJ가 이룬 성과는 매우 의미 있고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박정진 사장의 중간 평가다.
그는 이런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베트남 시장에 최적화된 신제품 출시, 공격적인 마케팅, 강력한 영업력 등 식품사업의 기본기가 잘 구현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현지 파트너와 호흡도 잘 맞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히트상품 개발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MSJ 히트 상품 ‘헤오 까오 보이(Heo Cao Boi)’. 소시지를 통에 넣고 치즈 분말을 뿌린 뒤 흔들어 먹는 재미 요소로 인기다.
(진주햄 제공)
MSJ의 최고 효자 상품은 바로 ‘헤오 까오 보이(Heo Cao Boi)’ 브랜드의 ‘소스 앤 셰이크(Sauce & Shake)’ 제품이다.
아이들을 겨냥해 기획된 이 제품은 종이컵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 통에 진주햄 주력 브랜드인 ‘천하장사’와 같은 간식 소시지 4개와 치즈 분말 소스가 들어있다.
아이들이 소시지를 통에 넣고 치즈 분말을 뿌린 뒤 흔들어 먹는 재미 요소가 더해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경진 부사장은 “진주햄의 기술력으로 소시지 맛도 기존 베트남 제품들에 비해 훨씬 좋아졌지만 소스를 뿌려 흔들어 먹는 재미 요소까지 가미돼 이 제품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고 설명했다.
이 제품 덕에 MSJ는 베트남 레토르트 간식 소시지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해당 분야 현지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 지난해에만 헤오 까오 보이 브랜드 제품은 약 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회사 매출의 약 37%를 차지하는 핵심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배경 뒤엔 한국, 베트남 회사 간 유기적인 호흡이 자리한다.
박경진 부사장은 “한국에서는 어육을 활용한 간식 소시지가 시장의 주류”라면서 “한국식 제품을 현지에 공급하려 했는데 마산그룹 사람들은 ‘베트남에서는 육류 간식 소시지가 대부분이고 조금 더 탱글한 느낌을 선호한다’고 조언해서 이를 제품 개발에 반영,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진주햄은 연구개발(R&D) 조직에 베트남 현지 연구원을 다양하게 채용하고 광범위한 시장 조사와 제품 테스트를 진행한 끝에 히트상품을 낼 수 있었다.
MSJ는 ‘포니’란 브랜드 아래 다양한 육류가공품을 선보이고 있다.
(진주햄 제공)
마산그룹과의 시너지는 또다른 히트상품 ‘포니(Ponnie)’로 이어졌다.
박정진 사장은 “베트남 내의 냉장유통 환경은 수년 전보다 훨씬 개선됐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기에 냉장제품보다는 상온제품 시장이 더 큰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 마산그룹 마케팅팀은 중국에서 많이 판매되는 육류 상온 소시지를 베트남 시장에 출시하고 싶다는 의사와 함께 진주햄에 개발을 의뢰해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관련 법규상 상온 유통이 허용되지 않는 제품이었기에 진주햄은 해당 기술력이 없었다.
하지만 마산그룹의 주선으로 진주햄은 중국 1위 육류가공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베트남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3개월간 상온 유통이 가능한 육류 소시지 제조에 성공했다.
제품 개발 이후 마산그룹은 베트남 최고 유명인사인 선뚱(Sơn Tùng)을 모델로 대대적인 광고를 집행했고 영업팀은 전국 10만개 이상의 매장에 제품을 입점시키며 단기간 내 육류 스낵 매출을 연간 100억원 이상 판매되는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위기는 없었나
물론 이런 호실적 이면엔 숱한 갈등과 위기도 있었다.
두 회사는 합작사 설립에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4년, 본격적인 협상만 2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MSJ의 출범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박정진 사장은 “진주햄이나 마산그룹 모두 합작사 설립은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었고 한국과 베트남 간의 문화나 사고방식의 차이 등도 상당했기에 두 회사 간의 협업이 삐걱거리는 일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초기에는 양사가 서로의 역량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박경진 부사장은 “‘기술적 역량이 이제 다한 것 아닐까?’, ‘마케팅과 영업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나?’와 같이 서로의 영역에 대한 의구심이 실무진 선에서 생겨났다”며 “특정 신제품 개발이 지연되거나 판매가 기대보다 낮은 성과를 거두게 됐을 때 양사 실무진은 서로를 비난하거나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했고 급기야 담당 인력 교체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기 극복의 해법은 ‘초심’에 있었다.
박정진 사장은 “두 회사 최고경영진 사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하고 실무진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중요한 신제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며 “이런 과정에서 신뢰는 회복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베트남 주요 인력의 한국 견학 프로그램 정례화, 합작법인 제품 포트폴리오 장기 로드맵 제시 등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였다.
박경진 부사장은 “여러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지난 7년 가까운 기간 동안 계약서 상에 포함된 ‘극단적 갈등 상황에 대비한 조항’들은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었고 원만한 협업 관계가 유지돼 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런 협업 과정을 거치며 서로 ‘윈윈’할 여지가 많아졌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박정진 사장은 “진주햄의 가공치즈 제조 자회사인 장안유업이 천하장사 제품에 사용되는 하이멜트 치즈, 액상치즈 등을 제조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MSJ의 신제품에 특화된 치즈를 개발, 수출함으로써 직접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며 “카브루가 베트남 내에서 맥주사업을 하고 있는 마산그룹과 함께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는 것 등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예”라고 밝혔다.
또한 “베트남 2위 재벌 기업다운 세밀한 경영관리 시스템이나,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전략 등은 진주햄을 경영하는 데 큰 영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진주햄 경영진은 “해외진출을 고려한다면 믿을 만한 현지파트너를 신중하게 발굴해야 하고 함께 하기로 했다면 신뢰 기반으로 소통하며 경영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진주햄 제공)
K소시지 베트남서 본격 시동
2018년 당시 베트남 육류가공 시장은 전체 식품 시장의 1% 미만으로 초기 단계였다.
하지만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매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박정진 사장은 “콜드체인(저온 유통) 환경도 빠르게 개선되면서 베트남 육류가공시장은 상온·냉장제품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무르익고 있는 가정간편식(HMR) 시장까지 막 태동하면서 다양한 제품이 선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1970~80년대 상온, 1990년대 이후 약 20년 간 냉장·냉동, 그리고 최근 10여 년 간 가정간편식 시장이 순차적으로 발전해왔던 우리나라 시장 성장 공식과 전혀 다른 양상. 박 사장은 “모든 육가공 유통형태·방식의 시장이 한꺼번에 열리고 있는 아주 독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장 변화에 발맞춰 MSJ는 상온 제품군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한 뒤 서양식 냉장 소시지는 물론 베트남 전통 육류가공품, 가정간편식 제품까지 다양하게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상온 소시지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을 넘긴 만큼 올해는 냉장 제품 비중이 전체 매출의 약 20% 가까이 이를 수 있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후문.
베트남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진주햄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박경진 부사장은 “마산그룹은 돼지를 도축하고 냉장육을 유통하는 사업에도 대규모로 투자해 MSJ의 육류가공 사업과 수직계열화를 이뤘고 빈그룹으로부터 유통사업을 인수해 베트남 내 최대 소매업체로 등극한 만큼 MSJ의 육류가공 사업이 경쟁사 대비 월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 지배적 업체로 도약할 잠재력은 더욱 커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MSJ는 2030년까지 연평균 30%씩 성장해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박정진 사장은 이 목표가 “그간의 성과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도전적인 목표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헤오 까오 보이와 포니라는 양대 브랜드를 기반으로 상온 소시지부터 냉장, 냉동, 가정간편식·육류 스낵까지 육류가공을 아우르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것“이라며 ”냉장육 사업과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확보된 우수한 원료육을 바탕으로 탁월한 품질을 구현하며 마산그룹과 협업 관계를 강화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해외 진출 꿈꾸는 K푸드 기업이 있다면?
해외 시장 진출, 특히 합작사 모델을 고려하는 다른 한국 식품 기업들에게 박경진 부사장은 ‘신뢰’와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출생률로 인해 급격히 노령화돼 가는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 상황은 진주햄처럼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온 회사에게는 엄청난 위기 요인”이라며 “미래를 생각할 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박정진 사장은 “믿을 만한 파트너를 찾는 일 역시 단독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것만큼 쉽지 않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일이지만 진주햄의 경험에 따르면 사업이 안착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박경진 부사장은 합작사 설립 파트너를 물색할 때 “가능한 인연이 있는 사람을 통해 상대방의 평판을 확인하고 실제 계약 등을 체결하기 전에 현재 사업 상황이나 운영 방식, 함께 추진하려는 일에 대한 열정이나 비전, 상호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측면은 뭐가 있는지 등에 대해 깊은 대화를 상당 기간 나눠보라”고 권했다.
더불어 박 부사장은 “일단 파트너로서 같이 일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면 계약은 꼼꼼히 체결하되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를 단단히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서 ‘K소시지’ 대박...진주햄 현지 합작사 1300억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