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창립자 퓰너 별세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설립자.
“그는 보수주의라는 거대한 도시의 ‘판테온 신전’ 같은 존재였다.
”(뉴욕타임스)
미국 보수 진영 최대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창립자이자 미 정가의 대표적 친한파인 에드윈 퓰너(83)가 18일 심장 질환으로 별세했다.
케빈 로버츠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은 애도 성명에서 “그는 단순한 리더를 넘어 비전가이자 건설자, 최고 수준의 애국자였다”며 “미국을 인류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번영한 국가로 만든 원칙을 지키기 위한 그의 결단은 보수 운동의 모든 근간을 형성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했다.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 1층 로비에 붙어있는 ‘개인의 자유와 기회, 번영과 시민사회가 있는 미국을 건설한다’는 표어처럼 퓰너는 감세와 작은 정부 등으로 대변되는 우파 싱크탱크의 선봉장이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경기 일산 자택을 찾아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에드윈 퓰너.
1941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퓰너는 콜로라도 레지스 대학에서 학사,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MBA)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연방 하원 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맥주 재벌 쿠어스의 기부금 25만달러를 종잣돈으로 헤리티지재단 창립을 주도했다.
당시는 베트남 전쟁, 미·소 체제 경쟁에 따른 후유증으로 보수가 가장 어려웠을 때로 평가받는다.
그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36년간 이사장으로 재단을 이끌며 보수의 가치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데 힘썼고 보수 집권에도 수차례 일조했다.
2022년 7월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제13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포옹하는 에드윈 퓰너.
창립 초기 직원 9명에 불과했지만, 이사장에 오른 지 2년여 만에 직원 250여 명에 회원 60만명에게서 8000만달러 기부금을 받는 보수 대표 싱크탱크로 급성장시켰다.
재단은 어떠한 정부 지원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헤리티지재단의 성공 비결은 1장짜리 브리핑 페이퍼였다.
수백 쪽에 달하는 논문 대신 핵심 내용을 한 장에 담아 대통령이나 의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책 제안을 해야 한다는 게 퓰너의 지론이었다.
생전에 양복 안주머니에 미국 헌법 전문이 적혀 있는 핸드북을 넣고 다닌 그는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가 이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했다.
재단의 전성기는 레이건 행정부 때부터였는데 연방정부 축소, 반(反)규제와 감세를 골자로 하는 ‘리더십 지침(Mandate for Leadership)’ 보고서는 레이건 정부의 교과서로 통했다.
1994년 공화당 소속 뉴트 깅그리치 하원 의장이 작은 정부를 전면에 내세웠던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도 재단이 틀을 짰다.
당시 영국 텔레그래프는 고인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 인사”로 꼽았다.
그래픽=정인성
그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인수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당시 퓰너는 긴 회의를 싫어하는 트럼프가 회의를 30분 만에 끝내려 하자 “레이건 대통령은 각료 회의에서 모든 장관과 일일이 대화하며 메시지를 조율했다.
그래야 일관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트럼프는 즉각 퓰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보수를 접수한 지금도 재단은 제1의 싱크탱크로 남아있다.
고인은 미 정가에서 손꼽히는 친한파로 한국만 200회 가까이 방문했다.
그는 1980년대 미국 워싱턴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는 2018년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내 친구였던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청와대에 전화해 ‘김대중을 건들면 재미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 고인과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자가 ‘왜 저런 보수주의자와 어울리냐’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내 친구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고 한 적도 있다.
퓰너는 김대중뿐 아니라 전두환·노무현·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을 현직 때 만났다.
퓰너는 삼성가(家)와도 3대를 이은 인연을 갖고 있다.
재단은 1985년부터 ‘이병철 콘퍼런스’를 매년 진행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언젠가 ‘아들이 헤리티지에서 일하며 워싱턴을 배울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고인은 “내가 흔쾌히 받아들이자 이 회장이 두 팔을 벌려 나를 포옹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2022년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개막식에서 퓰너를 “삼촌”이라 부르며 껴안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도 선대 때부터 오랜 기간 교분을 이어왔다.
한때 ‘정주영 펠로’란 직함을 갖고 활동했고, 최근까지는 한화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평소 “한국의 성공은 미국 외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면서 “미국은 이처럼 성공한 한국을 맹방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2년엔 우리 정부에서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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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석 기자 wschoi@chosun.com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mail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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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 워싱턴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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