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곳에 ’200년 만의 물폭탄'
지난 19일 오전 10시 46분쯤 경남 산청군에 시간당 최대 100mm가 넘는 폭우가 내리면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어제 오후까지는 800mm에 달하는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
토사와 나뭇가지 등 잔해물이 주택가를 덮치면서 생비량면 상능마을이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다.
경남 산청에서는 20일 오전 11시 기준 8명이 숨지고 6명이 숨졌다.
전국에서 피해가 가장 커 소방청은 지난 19일 오전 10시쯤 대응 1댄계를 발령했다가 1시간 뒤 2단계로 격상했고, 오후 1시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산청군은 지난 3월 21일 대형 산불로 7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뉴스1 20일까지 닷새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전국이 초토화되고, 17명 사망·11명 실종이라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태풍을 동반하지 않은 비구름대가 이토록 많은 비를 전국적으로 뿌린 것은 기상 관측 이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전국을 강타한 비구름대가 20일 오전 수도권과 강원도에 마지막 비를 뿌린 뒤 소멸했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하며 정체전선(장마전선)을 북쪽으로 완전히 밀어내 더 이상 장맛비는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적으로 장마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이번 비는 서해상에서 한랭 건조한 공기와 고온 다습한 공기가 정면충돌하며 거대 저기압을 만들고, 비의 ‘씨앗’이 되는 수증기가 계속 공급되며 저기압 안에서 연쇄적 비구름대를 형성, 16~20일 닷새간 전국 곳곳에 비를 뿌렸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충청과 남부 지방 10곳에 ‘200년 빈도 비’가 내렸다.
이날 충청 서산(413.4㎜)·세종(324.5㎜)·당진(310㎜), 호남 광주광역시(426.4㎜)·함평(340㎜)·무안(311㎜) 등에선 200년에 한 번 발생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그래픽=백형선 폭우의 원인은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의 강한 충돌로 인한 비구름대의 비대화, 비구름대의 잦은 정체로 인한 벼락 폭우 발생, 산지 등 지형 영향 등이 꼽힌다.
여기에 더해 주로 밤부터 새벽 사이 집중된 ‘야행성 폭우’, 비가 그친 뒤 방심한 틈에 갑자기 발달한 ‘돌발성 폭우’,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많은 강수량과 이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회 인프라의 한계도 피해를 키웠다.
궁극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다.
과거 일정했던 계절적·기상적 패턴이 깨지고 예측 불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실시간 발생하는 극한 기상을 ‘뉴 노멀’(새로운 기준)로 삼아 적극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며 “기후변화 속도보다 대응 속도가 빨라야만 기후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비는 ‘이례적’이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비구름대의 형성부터 크기, 시간당 강수량, 누적 강수량 면에서 역대급 기록을 썼다.
①괴물 비구름대 왜 만들어졌나 비구름대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것은 이맘때 우리나라에 나타나지 않았던 폭염이 발생했고, 북쪽에 묶여 있어야 할 북극 찬 공기가 느닷없이 떨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달 초 우리나라는 때 이른 폭염을 겪었다.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이르게 세력을 확대하며 우리나라 대기의 상·하층을 덮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태백산맥을 넘으며 뜨거워진 동풍이 서쪽 지역에 열풍을 공급했다.
공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지며 우리나라 상공은 마치 시한폭탄을 품은 듯 대류 불안정이 심해졌다.
찬 공기가 내려와 충돌하면 큰비가 내릴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 시간당 68.5㎜의 ‘극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 비는 다가올 물 폭탄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대류 불안정이 이어지던 지난 16일 서해상에선 북서쪽에서 내려온 찬 공기와 남서쪽에서 불어온 뜨겁고 축축한 공기가 충돌했다.
‘절리 저기압’이라고 부르는 이 찬 공기 덩어리는 원래는 지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는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에 의해 북쪽에 묶여 있어야 하는 바람인데, 지구 온난화로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서 뚝 떨어져 나온 것이다.
불안정했던 우리나라 상공에서 북극 찬 바람이 충돌하면서 ‘괴물 구름대’가 형성됐다.
호우에 무너져내린 편의점 20일 오후 경기 가평군 조종면 신상리의 한 편의점이 폭우로 쓰러진 모습. 지반이 무너지면서 건물이 하천 물에 잠겼다.
이날 새벽 가평에는 시간당 최고 76㎜ 폭우가 쏟아졌다.
/장련성 기자 산사태에 돌밭으로 변한 마을 지난 19일 경남 산청군 외정마을에 시간당 100㎜에 달하는 ‘극한 호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돌덩이와 나뭇가지가 마을을 덮쳤다.
마을 주민이 돌덩이가 쏟아진 산을 가리키고 있다.
/뉴스1 ②왜 하필 서산·광주·산청·가평? 집중호우 피해 지역은 모두 비구름대가 ‘정체’한 곳이었다.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가 강하게 충돌할수록 비구름대는 얇고 좁은 띠 형태로 발달한다.
이 전선 바로 아래 놓인 지역에선 집중호우가 발생하는데, 문제는 전선이 움직이지 않고 멈췄을 경우다.
서산과 광주, 산청이 하필 비구름대가 멈춘 지역이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만약 전선이 다른 곳에 머물렀다면 비 피해 지역은 바뀔 수 있었다”며 “지리산 자락에 있는 산청은 비구름대가 지리산과 충돌하며 비를 쏟는 지형적 영향도 컸다”고 했다.
경기도 가평은 기습적인 ‘널뛰기 비구름대’에 당한 케이스다.
비구름대가 남부 지방으로 내려간 줄 알았는데, 20일 새벽 느닷없이 수도권과 강원에 많은 비가 쏟아져 미처 대비하지 못한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절리 저기압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공기 덩어리가 수도권 상공으로 들어오며 새로운 비구름대를 만든 것이다.
야행성 폭우도 비 피해를 키운 원인이었다.
비의 씨앗이 되는 고온 다습한 공기는 낮보다 밤에 유입이 활발하다.
이 때문에 새벽 취약 시간대에 돌발성 폭우가 내리며 가평에서만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는 등 피해가 컸다.
③“기후 재난 이제 시작, 제로 베이스에서 대책 세워야”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와 극한 기상에 대비한 인프라 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채진 목원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하도가 잠기면 배수 펌프가 돌아가서 물 퍼내는 식으로 홍수 인프라가 설계돼 있는데, 문제는 설비 용량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다는 것”이라며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수 시스템도 기존에 ‘최근 5년간 최고 강수량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던 것에서 나아가 분석 이상으로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각 지방의 하천 준설과 정비를 통해 ‘물그릇’을 키우고 홍수 방어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집중호우 때 과거 ‘4대강 사업’으로 강을 정비한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본류에선 홍수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류·지천에선 범람과 토사 유출이 빈발했다.
지류·지천 정비가 더디다 보니 피해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