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사고조사위 중간 결론
유가족 반발로 언론 발표 취소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ARAIB) 관계자들이 지난 19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12.29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현장 브리핑'에 참석하던 중 유가족들의 항의로 인해 회의실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말 전남 무안공항에서 179명의 인명 피해를 낸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조사하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조종사가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잘못 껐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조위는 지난 19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이런 내용의 사고 여객기 엔진 조사 결과를 참사 유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지난 3월 사고 여객기의 엔진 2개를 엔진 제작사가 있는 프랑스로 보내 정밀 조사를 벌여 왔는데, 그 결과를 설명한 것이다.
왼쪽 엔진이 잘못 꺼지면서 비행기의 주전력이 완전 차단됐다고 한다.
사조위는 유가족 설명 직후 언론에 해당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유가족의 반발로 취소됐다.
유가족 측은 본지 통화에서 “조사위가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 문제, 기체 결함 여부 등 제기된 문제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조종사 과실로만 몰아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현국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사조위가 유가족에게 공유한 보고서에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오른쪽 엔진을 꺼야 했는데, 작동 중이던 왼쪽 엔진을 잘못 껐다.
그 결과, 두 엔진 모두 출력을 잃으며 랜딩기어(착륙 바퀴)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조종석 녹음 장치(CVR)에는 “2번 엔진(오른쪽 엔진)을 끄자”는 내용이 녹음돼 있는데,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FDR)에는 1번 엔진(왼쪽 엔진)이 꺼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조종사가 문제가 있는 오른쪽 엔진을 끄려고 했지만, 실제론 왼쪽 엔진을 오른쪽 엔진으로 오인해 잘못 껐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엔진의 전자 제어 장치(EEC) 등을 정밀 분석한 사조위는 “엔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왼쪽 엔진에 기계 결함이 있어 꺼진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껐다는 뜻이다.
그동안 확인된 무안 참사의 직접적 원인은 활주로 접근 중 만난 가창오리 떼였다.
사고 당일인 작년 12월 29일 오전 8시 57분 무안공항 관제탑 관제사는 사고 여객기에 조류 활동 주의 경고를 했고, 이 직후인 오전 8시 58분 56초 사고 여객기 조종사는 “메이데이. 메이데이.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고잉 어라운드(복행하겠다)”라고 무전했다.
당시 사고 여객기 오른쪽 엔진에 철새가 빨려 들어가 엔진 뒤쪽으로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실제 조사 과정에서 양쪽 엔진 모두에서 가창오리 깃털과 혈흔이 발견됐다.
오리 떼와의 충돌로 양쪽 엔진 모두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항공기 전기와 유압 장치에 문제가 생겨 착륙 바퀴가 내려오지 않아 조종사들이 ‘비상 동체 착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체적 해석이었다.
그런데 이날 조사위는 ‘왼쪽 엔진이 꺼진 것은 단순히 오리 떼와의 충돌이 아니라 조종사가 실수로 끈 것’이라는 취지의 조사 내용을 내놓은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한 결과, 조종사가 비상 대응 절차를 수행하면서 엔진에 연료를 공급하는 ‘컷오프’ 스위치를 오른쪽이 아닌 왼쪽 것을 내렸고, 이후 엔진 소화기 스위치도 오른쪽이 아닌 왼쪽 것을 당긴 것으로 나타났다.
엔진 소화기는 한 번 사용하면 해당 엔진을 공중에서 재시동할 수 없다.
이런 점을 볼 때 왼쪽 엔진은 조종사가 껐다고 사조위가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손상돼 전력이 끊겨버린 오른쪽 엔진과 왼쪽 엔진 모두 꺼지면서 항공기가 사실상 ‘셧다운’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상 작동 중인 엔진을 꺼버리는 실수는 항공업계에서 종종 발생한다.
2015년 2월 대만 타이베이를 출발한 트랜스아시아항공 235편도 이륙 직후 왼쪽 엔진이 고장 났지만, 조종사가 정상 작동 중이던 오른쪽 엔진을 끄면서 추락해 탑승객 58명 중 43명이 숨졌다.
사조위 측은 조종석의 랜딩 기어 레버가 작동되지 않은 점도 확인했다.
조종사가 착륙 바퀴를 내리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조위 측은 해당 조종사들에 대한 비상시 훈련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유족들은 “모든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돌린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사고 직후 활주로 끝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 인명 피해를 늘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 이번 발표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제주항공조종사노조도 20일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 중심으로 만드려는 의도”라며 반발 성명을 냈다.
현재 사고 책임 관련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직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조사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종사, 손상 심한 오른쪽 아닌 왼쪽 엔진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