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이어 참의원도 과반 확보에 실패할 듯
20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여당인 자민당의 고전은 어느 정도 예고됐던 것이다.
서민 음식인 라멘이 1000엔(약 9360원)을 넘는 고물가에 미국발(發) 관세 폭탄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여론이 들끓었고, 정치자금 스캔들 등의 여파로 작년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중도층의 자민당 지지 이탈도 계속됐기 때문이다.
자민당 내에서는 ‘참의원 과반수 유지’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예상보다도 더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보인다.
출구조사 발표 후 회견하는 이시바 총리 일본 자민당 총재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20일 참의원(상원) 선거 출구조사 발표 후 자민당 본부 개표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민·공명 연립 여당이 과반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AFP 연합뉴스
’반(反)외국인 정서’ 돌풍
자민당이 계산 못 한 대목은 ‘일본인 퍼스트(우선)’를 내건 강경 우익 참정당의 부상이었다.
의석수 1석이었던 참정당은 이번에 최소 10석, 최대 22석을 추가로 얻어 11~23석을 확보할 것으로 NHK 출구 조사에서 예상됐다.
미국·유럽을 휩쓴 반(反)외국인 정서가 일본 열도에도 상륙하면서, 이에 편승한 강경 우익 정당이 전통적 보수 유권자 상당 부분을 흡수해 안 그래도 휘청이던 자민당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다.
2020년 결성된 참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외국인 토지 구매 제한, 외국인 생활보호 지급 중지, 외국인 참정권 불인정 등과 같은 외국인 배척을 전면에 내세웠고 가짜 뉴스 선동도 불사했다.
가미야 쇼헤이 참정당 대표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들은 부동산을 소유해도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거주 외국인이라도 일본 내 부동산을 상속받으려면 일본인과 똑같이 상속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유튜브나 엑스 등 일본 소셜미디어에선 “일본은 누구를 위한 나라냐” “너무 열받게 하는 자민당”과 같은 글과 동영상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선거운동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반외국인 정서에 올라탄 참정당의 돌풍은 소셜미디어에서 ‘일본 생활보호 대상자의 3분의 1이 외국인이다.
이들은 일본에서 일 안 하고 돈을 챙긴다’ ‘외국인이 의료 혜택만 챙기고 건강보험료는 내지 않는다’ 같은 선동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모두 사실과 차이가 있는 주장이지만, 유권자들 사이에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그만큼 집권 자민당엔 불리하게 작용했다.
참정당이 보수표를 잠식하자 자민당도 이에 대응해 외국인 정책 관련 컨트롤 타워를 만들겠다고 뒤늦게 나섰지만, 실기(失機)했다는 평가다.
정계 개편 불가피할 듯
이번 선거 결과로 일본 정치판은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전망이다.
일본 언론들은 이시바 총리의 사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상원인 참의원과 하원인 중의원을 둔 양원제 국가로, 집권 여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면 참의원·중의원 양쪽의 과반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여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유지를 위해 50석이 필요한데, NHK 출구 조사에 따르면 32~51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아사히신문 출구 조사에서는 자민당이 34석 전후, 공명당이 7석 전후의 의석을 획득하는 데 불과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시바 내각 출범 직후인 작년 10월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15년 만에 단독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는 참패를 당한 바 있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이날 밤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퇴진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는 NHK 인터뷰에서도 “많은 국가 과제를 짊어질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음 달 1일 미국의 관세 부과와 같은 국가적 이슈가 있기 때문에 당장 사퇴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야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내지 않는 한, 법적으론 총리를 지속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결국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이시바 총리가 어느 시점에 퇴진하고 새 총재를 앞세우는 동시에 일본유신회 등 야당 일부를 끌어들여 과반수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민당 내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가 물러날 경우 차기 총리 후보로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색을 이어받은 보수 성향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 국회의원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다만 이시바를 밀어낸다 해도 총리가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라, 이 유력 후보들은 ‘차기 총리론’ 같은 발언을 극도로 삼가고 있다.
일본유신회 등 일부 야당들도 몰락하는 자민당의 연립에 굳이 올라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우익·보수·중도·진보·좌익 등 이념적으로 사분오열된 야당들이 대집결해 정권 교체하는 시나리오도 가능성은 낮지만 배제할 순 없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다른 야당에 정권 교체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자민당의 전 국회의원은 “노다 대표가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에게 총리직을 양보하고, 야당 대결집을 호소하는 큰 그림을 그린다면 2009년과 같은 정권 교체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참의원·중의원
일본은 1889년 메이지 정부 때 영국 의회를 본떠 귀족원(상원)과 중의원(하원)을 두는 양원제를 도입했다.
참의원은 1947년 귀족원이 명칭을 바꾼 것이다.
임기 6년의 의원 248명으로 구성되며 3년마다 절반을 선거로 교체한다.
대중(大衆)을 대표하는 중의원은 4년 임기의 의원 465명으로 구성된다.
중의원이 정치를 주도하고 참의원은 견제하는 역할에 가깝다.
참의원과 중의원이 각각 총리 지명 선거를 치러서 지명자가 같을 경우 해당 인물이 총리가 되지만, 지명자가 다를 경우엔 중의원의 결론을 우선한다.
참의원은 중의원이 가결한 법률의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고,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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