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혁신위의 친윤 배제… 또 실패하나
대통령 파면 빼면 오늘도 평범한 하루?
대란 땐 대치… 의원 30명 사퇴 어떤가
1% 확률… 친윤 리더가 벼랑서 손 놔야
김승련 논설실장
지난 1개월 남짓 동안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내놓은 주문은 탈윤석열 부부, 탈계파, 영남색 약화로 요약된다.
이렇게 하면 반석에 오른다고는 장담 못해도, 이 정도도 못하고는 위기탈출은 어렵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앞줄에 리드하던 친윤 중진들과 뒤에 숨은 ‘언더(under) 찐윤’이 보여준 혁신 저항은 상궤를 벗어난다.
대통령과 술 마신 걸 자랑했고, 여사에게 받은 문자를 훈장처럼 여기던 이들이다.
이들이 떠받들던 대통령 부부는 표를 준 1639만 유권자 중 상당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내려놓는 게 상식이고 순리지만, 이들 생각은 다르다.
소설 ‘이방인’의 한 대목처럼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된 거 빼면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부조리극 같은 인사청문회 장면은 지금대로는 안 된다는 걸 보여줬다.
친윤 의원들은 총리의 돈 문제,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보좌관 갑질, 논문 표절을 질타했다.
이들 상당수는 ‘계엄 해제’ 표결 때 뒤로 빠졌고, 대통령 체포 저지엔 적극적이었다.
헌법과 법률의 작동을 가로막으려 했던 이들이 스폰서 의혹, 학문 윤리 훼손, 쓰레기 갑질을 놓고 질타했다.
후보자의 명백한 잘못이고 지적도 맞는 말이었지만, 왠지 울림이 작았다.
이런 일은 다음 총선까지 3년간 반복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제 장관 후보자’ 1명에 대해서만 지명을 철회했다.
2명 모두 낙마하지 않은 것은 민심이 등돌린 친윤 야당의 전망 없음을 빼고는 설명이 안 된다.
차떼기 사태 때 2004년 한나라당 의원 37명은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한다.
그들이 주판알 못 튀겨서 그만뒀다고 보지 않는다.
그쯤은 하는 게 당과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또 “자기 정치 한다”고 친윤이 꼬집는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아버지 부동산 거래로 의심을 받기 싫다며 3년 남은 의원직을 내던졌던 인물이다.
국민의힘은 외계인에게 침공당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미국 잡지 인터뷰에서 썼던 이 표현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일’을 가리킨다.
보수 정치의 산 역사인 이 정당이 윤석열의 늪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구조 요청도 자구 노력도 변변히 하지 않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말처럼 대란(大亂)엔 대치(大治)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
큰 위기엔 상상 못했던 수를 찾아야 길을 만들 수 있다.
윤희숙 혁신위가 제안한 윤석열 부부 전횡 반성의 당헌당규 삽입, 수도권 정치인의 최고위원 선출 확대, 국회의원 당원 소환제를 포함하는 1∼4호 혁신안이란 것도 ‘대치’의 한 방편이다.
친윤의 문제는 친윤이 풀 수밖에 없다.
친윤 밖 혁신위가 아무리 요구해야 당권을 쥔 친윤 진영은 겉으론 마이동풍이고, 속으론 더 움츠러든다.
그러자면 선두에 섰던 친윤 중진이 나서야 한다.
억울하다고 느끼겠지만,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자신을 포함해 영남과 강원의 언더 찐윤 의원들을 설득해 내야 한다.
올가을까지 현역 30명이 의원직을 동반 사퇴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재선거를 위한 미니 총선이 열리게 된다.
인지도 높으나 신뢰를 잃은 친윤 중진과 역할이 미미하던 언더 찐윤이 물러난 지역구에 수도권 정치를 이해하는 5년, 10년 뒤 대통령감, 당 대표감을 발굴해 공천할 수 있다.
새로운 피는 당이 활력을 되찾아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독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국정은 국정대로 견제와 균형을 더 찾아갈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윤석열 정치의 수혜자였던 친윤 중진들에겐 속죄와 자기희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확률은 1%도 안 된다는 걸 안다.
외계인 침공 확률만큼 작을 것이다.
3년이나 남은 의원직을 누가 버리려 하겠나. 하지만 버틸수록 당은 수렁에 빠질 것이고, 지탄이 빗발칠 것이 자명하다.
지역 유권자들은 앞에서 입을 닫을 뿐이지, 누가 어떻게 국민의힘 정치를 망가뜨렸는지 잘 안다.
누가 앞줄 친윤인지 뒷줄 언더인지도 안다.
이런 찜찜한 정치로 3년 임기를 마저 채울 것인가.
3선, 4선으로 선수(選數)를 쌓는 게 직업적으로 성공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를 마음에서 존경하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백범 선생이 배웠다는 옛 가르침에 그른 말이 하나도 없다.
나뭇가지 잡고 올라가는 것은 별로 대단하달 게 없다.
하지만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손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용기로, 이 시대 리더에게 꼭 필요한 가치다.
친윤 중진과 언더 찐윤의 좌장들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김승련 칼럼]외계인에게 침공당한 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