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인간이 불을 집어든 날, 첫 셰프가 탄생했습니다.
100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음식에 문화를 담았습니다.
미식을 좇는 가장 오래된 예술가, 셰프들의 이야기입니다.
국내 첫 미슐랭 시오라멘 ‘담택’ 조원현 셰프 인터뷰 불우했던 어린시절, 봉지라면으로 주린 배 채우며 살아 “과거의 고통이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 누릴 수 있어” “담택 시오라멘, 봉지라면으로 제품화 목표, 美 진출도” 조원현 담택 세프. 채상우 기자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매일 라면을 먹었던 7살 소년이 있다.
그는 진창에 묻혀 있던 한없이 여린 잎이었다.
‘진흙 속에서도 꽃은 핀다.
’ 멋져보이고파 휘갈기던 명언이,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국내에서 시오라멘으로 첫 미슐랭에 오른 담택의 조원현 셰프는 해외 유학파, 고급 레스토랑 출신이 넘치는 미슐랭 세계에 이방인이다.
조원현 셰프의 출신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다.
웨이터가 되기 전 중고등학교 때에는 노가다꾼이었다.
조원현 셰프는 과거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경의 시간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었으니깐요. 힘든 시절이 있었기에, 이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 아닐까요.”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던 당시 조원현 셰프. 본인 제공 1994년 조원현 셰프가 7살이 됐을 무렵,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해외에 억류돼 갑작스럽게 이산가족(離散家族)이 됐다.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가 붙고, 그리 유복하지 않았던 가정 환경은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졌다.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먹고 살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했다.
심지어 집을 불법도박장으로 사용해 경찰에 붙잡혀 가기도 했다.
외동 아들인 조원현 셰프는 코흘리개 시절부터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조원현 셰프는 배고플 때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라면을 혼자 끓여먹곤 했다.
라면은 조원현 셰프의 주린 배를 채워준 주식이자, 그가 가장 좋아한 음식이기도 했다.
중학생 무렵부터는 자연스럽게 거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학업을 뒤로 하고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패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고 방황기를 거쳤다.
그 중 몇몇은 고등학생 시절 지역 깡패가 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건, 아무리 방황기라도 조원현 셰프는 불법적인 일을 업으로 하는 깡패의 삶까지 동경하지는 않았다.
고등하교 졸업 이후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던 조원현 셰프에게 고향 선배로부터 서울에서 라멘집에서 일을 하자고 제안이 왔다.
그는 그 간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무작정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제면을 하고 있는 조원현 셰프. 조원현 셰프가 라멘을 시작한 가게는 돈코츠라멘으로 유명한 멘야산다이메였다.
한국에 제대로 된 일본 본토의 돈코츠라멘을 선보이며 한국 라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가게였다.
조원현 셰프는 7년 동안 멘야산다이메에서 일을 했다.
육수를 내고 제면을 하고, 차슈와 아지타마고를 만드는 등 라멘의 기본기를 그곳에서 갈고 닦았다.
그 후에는 바질라멘 전문점 잇텐고에 들어가 라멘의 장르를 다양화하고, 라멘가게를 운영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조원현 셰프는 한국인에게 좀 더 맞는 라면을 고민했다.
묵직한 돈코츠보다는 맑고 시원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이라며 시오(소금)라멘을 선호할 것이라 분석했다.
와이프와 집 근처에서 능이백숙을 먹던 중, 능이백숙 국물과 조합한 시오라멘을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담택을 미슐랭에 올린 시오라멘을 개발할 수 있었다.
주방에서 조원현 셰프. 2018년 합정에 11평 작은 라멘 가게를 열었다.
항아리를 뜻하는 담(壜)과 집을 뜻하는 택(宅)을 합쳐, 담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항아리에 담아 숙성한 소금을 이용한 시오라멘이라는 의미였다.
담택은 월세집을 구하기도 힘든 시절 그와 와이프가 가진 모든 것을 건 가게였다.
하지만 가게 운영은 쉽지 않았다.
직원을 구할 여력이 없어 와이프와 둘이 가게를 꾸려나갔다.
돈을 아끼고자 저렴한 인테리어 업자에게 가게를 맡겼다가, 가게에 물이 넘칠 정도로 새는 등 문제가 생겨 한달 간 문을 닫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그래도 조원현 셰프는 끝까지 버텼다.
행운은 어느날 밀물처럼 찾아왔다.
2023년 유명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서 담택을 소개한 데 이어, 이듬해 3월 담택은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는 영광을 쟁취했다.
이후 올해까지 2년 연속 미슐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슐랭에 등재된 순간 ‘이제 조금은 살 만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간 와이프와 함께 했던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희망과 함께 ‘나는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까지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그 미슐랭을 유지하기 위해 어깨가 무겁습니다.
앞으로도 고객들을 감동시킬 맛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고민을 거듭할 것입니다.
” 담택의 시오라멘. 담택 담택의 시오라멘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매일 먹을 수 있는 한 그릇’이다.
그만큼 맑고 담백하며, 맛의 밸런스가 뛰어나다.
담택의 면은 다른 라멘집보다 식감이 부드러운 편이다.
국물과 한번에 삼켰을 때 부드럽게 후루룩 삼켜지는 맛이었다.
육수 역시 굉장히 맑고, 무겁지 않고 경쾌한 감칠맛이 있다.
은은한 능이향까지 있어 본토 일본의 시오라멘과 확연히 다른 감성을 전달한다.
육수에는 노계와 영계를 같이 쓴다.
노계는 육향과 깊은 감칠맛을 낸다.
영계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으로 은은하게 짙은 육향을 중화시킨다.
두 닭을 이용한 닭육수에 양파와 파 등 향채와 능이버섯을 넣어 60도에서 12시간을 끓인다.
차슈 역시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12시간 가량 염지한 돼지고기를 60도에서 12시간 수비드한 뒤 아주 얇게 저몄다.
단독으로 강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면과 국물과 조합으로 입 안 가득 만족감을 선사한다.
레슬링을 하고 있는 조원현 셰프. 본인 제공 조원현 셰프의 취미는 격투기다.
주짓수 퍼플벨트인 그는 최근 MMA에 푹 빠졌다.
MMA를 대하는 애정은 요리 만큼이나 각별하다고 한다.
“킥복싱으로 시작해 주짓수를 오래 수련했습니다.
지금은 MMA에 푹 빠졌고요. 남자답고 자신감을 올릴 수 있는 게 MMA에 매력 같습니다.
” 그는 얼마 전 그에게 소중한 작은 생명이 찾아왔다.
결혼 8년만에 와이프가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태명은 ‘꽃구리’다.
꽃과 거북이를 뜻하는 구리를 합친 이름이다.
태몽에 나온 생물들에서 이름을 땄다.
담택의 라멘. 담택 조원현 셰프의 셰프로서 꿈은 담택의 라멘을 봉지라멘으로 제품 개발해 성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릴적 먹었던 라면에 대한 노스텔지어일지 모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편한 한끼라는 담택의 시오라멘을 더 많은 이에게 맛보이고 싶은 셰프로서의 염원일 수도 있겠다.
“담택의 라멘을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담택의 라멘을 봉지라면으로 제품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넘어 외국에도 담택의 시오라멘으로 진출해보고 싶습니다.
불가능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나온 제 삶이 그랬듯이, 힘들고 어려워보여도 이겨내고 해내왔으니깐요.”
진흙 속에 핀 꽃…나이트 웨이터 출신 미슐랭 셰프의 꿈[미담:味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