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계정 공유 사기 피해 4년 사이 1.6배 증가
한 인터넷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OTT계정 공유’ 모집 글. [홈페이지 캡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자영업에 종사하는 40대 남성 박모 씨는 지난해 3월 한 인터넷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OTT 계정 공유’에 참여했다.
삶의 유일한 낙인 야구 생중계를 시청하기 위해선 티빙 회원권이 필요하지만 1달에 1만원이 넘는 구독료가 부담스러웠다.
단돈 2만8000원에 티빙 프리미엄 회원권을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다는 제안은 솔깃했다.
그렇게 약 9개월 동안 계정을 공유하며 문제 없이 티빙을 이용하던 어느날, 계정주인 정모 씨로부터 “지금 연장하면 기존 가격으로 회원권을 1년 더 이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A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2만8000원을 정씨에게 입금했지만 그로부터 약 2달 뒤 정씨는 돌연 연락을 끊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계정을 공유하자며 이른바 ‘파티원’을 모집한 뒤 돈이 입금되면 잠적해 버리는 방식의 사기 피해가 늘고 있다.
이같은 범행은 소액의 피해액으로 불특정 다수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수사가 진척되기 어렵다는 맹점이 있다.
일각에선 피해 규모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신고 플랫폼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1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해당 기관에 신청된 OTT 등 계정공유 플랫폼 관련 피해구제 건수는 지난해 92건으로 4년 전인 2021년 59건과 비교해 1.6배 넘게 증가했다.
또 올해 5월 12일까지 접수된 피해구제 건수는 44건을 기록했다.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지난해 수치의 절반 수준에 다다랐다.
OTT 계정 공유 사기는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앞선 A씨 사례에서 등장한 가해자인 정씨의 경우 무려 191명에게 2개월 동안 동일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기 피해자 공유 플랫폼인 ‘더치트’에 정씨에게 피해를 봤다고 호소한 이들의 규모다.
30일 사기범죄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인터넷사이트 ‘더치트’에 접수된 ‘정모씨 사건’의 피해사례가 191건으로 집계됐다.
[홈페이지 캡쳐]
피해자가 OTT 계정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OTT 서비스의 구독료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정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피해자 A씨는 “2만7000원이란 비용으로 1년 동안 티핑을 구독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며 “가장 저렴하게 올라온 것을 찾다보니 정씨와 접촉하게 됐다”고 밝혔다.
참고로 티빙의 기본 회원권인 ‘스탠다드 요금제’는 1달에 1만2500원에 달한다.
OTT 구독료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2023년 12월 9500원이었던 광고 없는 ‘베이직 요금제’를 폐지하고, ‘스탠다드 요금제’의 가격을 1만3500원으로 설정했다.
쿠팡플레이도 지난해 4월 와우 멤버십 요금을 기존 4990원에서 7890원으로 3000원 인상한 바 있다.
OTT 계정 공유 시장이 커지면서 이같은 피해는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OTT 등 구독 서비스 계정의 공유를 중개하는 플랫폼으로는 피클플러스, 링키드, 벗츠, 위즈니 등이 있다.
이중 피클플러스는 지난해 12월 기준 이용자 수가 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링키드도 이용자 수를 10만명 이상을 확보했으며 벗츠 역시 구글플레이스토어 기준 애플리케이션(앱) 다운로드 횟수가 1만회 이상에 달한다.
문제는 OTT 계정 공유 사기가 불특정 다수에게 소액으로 이뤄지다 보니 수사기관에서도 전체적인 피해규모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모든 피해 사례에서 범행의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일선서에서 수사 업무를 총괄했던 한 전직 경찰관 B씨는 “가해자가 1명이더라도 피해자가 100여명이라면 경찰은 100여건의 사건을 수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더욱이 가해자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하려면 가해자가 처음부터 사기를 칠 목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모든 사례에서 이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고윤기 법무법인 고우 변호사는 “소액 피해라 하더라도 민사소송을 통해 환불을 받을 수는 있으나, 가해자 특정과 입증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인 회복은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이에 피해자들이 ‘집단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B씨는 “수사기관이 전체 범행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선 피해 접수가 한 채널로 모일 필요가 있다”며 “개별 사건이 흩어지면 수사 지연은 불가피하고 결국 피해자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야 사기 혐의 입증도 가능해진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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