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사람과 디자인의 관계, 산업과 디자인의 관계, 문화와 디자인의 관계, 예술과 디자인의 관계…. 디자이너로서 늘 생각하는 주제다.
시와 혁명 같은 디자인을 꿈꾸고, 전쟁 같은 디자인을 밟아내면서 새로 얻은 질문이 있다.
‘디자인은 어떻게 ‘관계’하는가.’
디자인은 삶의 구조를 다시 짜고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산업과 디자인, 사람과 디자인, 공간과 사람. 그 모든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과 연결을 새롭게 엮는다.
디자인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해외의 흐름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핀란드 오울루는 산업 붕괴 이후 폐교를 시민 창작공간으로 바꾸며 도시를 재생했고, 영국 셰필드는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활력을 되찾았다.
프랑스 낭트는 정책 설계 초반부터 디자이너를 참여시켜 삶의 감도를 반영했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시작부터 디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 중인 지인을 만났다.
그는 원주감영 복원 현장 주변의 난삽한 모습을 보고 큰 허탈감을 느꼈다고 했다.
물리적 복원은 성공했을지 몰라도 관계의 복원은 실패한 것이다.
역사와 지역, 공간과 일상, 사람과 기억 사이의 관계.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연결할 것인가. 디자인은 이 질문에 답하는 도구여야 한다.
에너지 전환 역시 관계의 디자인이다.
RE100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햇빛 많은 남해, 바람 부는 동해, 생태가 살아 있는 제주. 이 모든 자원을 사람과 기술, 환경이 공존하는 구조로 연결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은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디자인해야 한다.
”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버크민스터 풀러의 말이 떠오른다.
요즈음 여러 가지로 지방의 문제가 화두가 돼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지방의 문제는 단순히 중앙과 지방이라는 공간성을 뛰어넘어 관계성에 주목할 때 비로소 그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지방을 살리는 길은 제도나 정책의 나열보다는 사람과 사람, 지역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달려 있지 않을지. 행정의 말미에 디자인을 얹는 것이 아니라 기획 첫머리부터 디자인과 함께 가야 하지 않을지. 지방이 중앙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방이 그 자체로 기능하는 주체가 되는 것. 디자인은 그렇게 사람을 살리고, 도시를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다.
이제 다시 묻는다.
“AI 시대, 우리는 어떤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는가.” 공존의 철학을 실천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기술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관계의 디자인.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혼란을 넘어설 가장 창의적이고 인간적인 전략이지 않을까. 미래는 디자인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미래는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한경에세이] 관계의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