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닫힌 K유니콘]
내수중심 'B2C' 집중 성장 한계
"IPO 염두 재무 건전화" 시각도
국내시장 투자주체 VC·PE 한정
첨단 '딥테크 유니콘' 육성 힘들어
연합뉴스
[서울경제]
한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 만큼 높은 연봉과 복지를 자랑했던 당근마켓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권고사직을 단행한 이유는 대표 서비스인 당근의 수익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 중고 거래 플랫폼인 당근은 이용자에게 따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당근에 노출되는 광고를 통해 실적을 올리고 있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매출로 1891억 원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99%가 광고로 발생했다.
문제는 플랫폼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져야 더 많은 광고를 노출해 이익을 낼 수 있는데 당근의 누적 가입자 수는 이미 4300만 명에 달해 신규 이용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사실상 포화 상태에 도달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기업들이 마케팅 예산을 삭감하고 있어 광고 시장도 전망이 밝지 않은 형편이다.
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수익을 내고 있다 하더라도 정점에 도달한 내수 시장에서 성장의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며 “내실을 다질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한 경영진이 가장 조율하기 쉬운 인력 축소를 통한 비용 효율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당근마켓이 신성장 동력으로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한 글로벌 사업을 점찍은 점 또한 권고사직의 배경으로 꼽힌다.
국내 시장에서 한계를 느낀 당근마켓은 해외로 시선을 돌려 현재 일본·캐나다·미국·영국 등 4개 국가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법인인 ‘캐롯캐나다’와 ‘캐롯재팬’은 지난해 각각 220억 원, 2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글쓰기는 물론 코딩·일러스트 등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대신하는 것 역시 조직 축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당근마켓의 기업공개(IPO)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당근마켓이 IPO를 염두에 두고 재무구조 건전화에 나섰다는 얘기다.
당근마켓은 지난해 별도 기준 연간 영업이익으로 376억 원을 달성해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가 직접적으로 IPO 계획을 밝힌 적은 없으나 업계에서는 수익이 나고 있는 데다 마지막 라운드 투자가 4년 전인 만큼 IPO가 임박했다고 본다.
당근마켓의 누적 투자금은 2270억 원으로, 2021년 시리즈 D 투자 유치 당시 3조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현재 관계자들은 당근마켓이 국내 자본시장뿐 아니라 미국 나스닥 등 해외 증시에 상장할 가능성 또한 지켜보고 있다.
당근마켓의 권고사직을 두고 ‘K유니콘의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는 시선도 지배적이다.
내수 시장과 기업과소비자간거래(B2C)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내고 있는 K유니콘들이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든 국내 시장에서 성장 날개가 꺾이는 것은 예정된 결말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035720)
·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토스)’로 불리는 IT 7대 공룡 중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토스를 서비스 중인 비바리퍼블리카가 최근 일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권고사직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원천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국내 생태계의 특성상 기업들은 내수 중심의 B2C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학에서 원천 기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창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유니콘이 나타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돼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구조가 잘 짜여져 있지 않다”며 “이 때문에 인터넷비즈니스모델(BM)로만 창업이 이뤄지고, 그러면서 초기부터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게 되면서 점점 내수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당근마켓과 같은 기존 유니콘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제2의 당근마켓’과 같은 신규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지지 않아 점점 K유니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신규 유니콘 수는 2022년 7개에서 2023년 4개, 지난해 2개로 급감했다.
올해는 아직 K유니콘이 탄생하지 않은 데다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조차 현재로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일까지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25개, 4개의 신생 유니콘이 탄생할 동안 한국에서는 단 하나의 유니콘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정된 투자 주체 역시 한국 유니콘의 성장판을 닫고 있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과 달리 해외 곳곳에서는 AI·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딥테크 유니콘’이 등장하고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헤지펀드, 국부펀드 등 다양한 주체가 투자에 참여하는 해외와는 달리 한국은 벤처캐피털(VC), 사모펀드(PE) 정도만 투자 주체로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을 빨리 회수하기를 바라는 VC·PE로 투자 주체가 한정되며 원천 기술을 갖춘 딥테크 유니콘이 탄생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단독] 원천기술 개발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