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페미니스트, 머리맡의 책]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조애나 러스(Joanna Russ, 1937-2011)는 뛰어난 페미니즘 SF 작가로, 젠더와 권력 문제를 관통하는 급진적인 문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페미니즘 비평서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외에도, 러스가 ‘SF와 여성의 글쓰기’를 주제로 쓴 글들을 모은 비평집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나현영 역, 포도밭출판사, 2020)도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필자 소개] 우희준.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가 얼마 전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정규 1집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을 발매하며 삶에 대해 진중하게 말하고자 했으나, 지금 막—미치도록, 내가 ‘여성’ 예술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찰나에 있다.
나처럼 삶을 안고 나아가고자 할 뿐인 여성 예술가들과 함께 있고 싶다.
나아가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있고 싶다.
음악으로 말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말이 되게 하고 싶다.
여성 예술가와 예술가
우리는 그저 예술가일 수 없다.
여성 예술가는 언제나 ‘여성 예술가’다.
우리가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은 쉽게 자기고백으로 폄하되고, 그저 사적인 경험담으로 치부되며, 때로는 단순한 섹슈얼리티로 축소된다.
우리가 낳은 작품들은 탯줄을 자르듯 (이 비유는 나도 원치 않으나 비판적으로 사용하였다.
아마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이 하듯이) 반복적으로 우리에게서 떼어 내어진다.
반면, 남성 예술가의 자기고백은 얼마나 쉽게 미화되는가. 그들의 고백은 ‘사적’인 것이기보다 ‘예술적’이라는 명예를 얻는다.
불명예는 그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안전한 지대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에 ‘부도덕’의 그림자에서도 자유롭다.
오히려 그 고백은 예술가로서의 행위주체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성 예술가의 주체성은 오랫동안 부정당해왔다.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서 저자 조애나 러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1837년, 영국의 유명 소설가 샬럿 브론테는 당시 영국 국민 시인 로버트 사우티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쓴 시에 대한 의견을 구한다.
하지만 사우티는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접으라고 충고했다.
“문학은 여자들의 일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 이어지는 문장에서 사우티는 브론테에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여성이라면 글 쓸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러스가 보여주는 사례를 셀 수 없다.
예술은 오랜 시간 여성에게 허락되지도 않았다.
여성의 예술은 취미거나, 결혼 전 소일거리였다.
1969년, 시카고대학교 사회학과 여자 대학원생들은 교수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여기까지 온 여자들은 죄다 별종들이다.
”
러스는 자신의 경험을 이어 소개한다.
“나는 내 학생 중 한 명이 내 사무실에서 흐느끼던 모습을 기억하는데, 그 학생이 운 이유는 가족이 그녀가 글 쓰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그 일을 결혼할 때까지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이걸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않아요!””
이러한 관습으로 인해 여성 예술가는 실제로 분열증을 경험해야 했다.
사회 관습을 따르고자 하는 ‘나’와, 관습을 어기고 예술을 하는 ‘나’ 사이에서 느끼는 이인감(離人感)이다.
비평가이자 시인인 수잔 주하즈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예쁜 여자애들과 똑똑한 여자애들 중 어느 쪽이 더 불리한지에 대해 자주 일어나는 논쟁에서 어느 한쪽을 택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불리하므로. (…) 특히 1950년대 미국 고등학교에서, 총명한 여자아이가 지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평범한”(평범함의 의미는 당연히 예쁘고 평판이 좋은 것이다.
) 여자애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주하즈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모든 것, 여자인 동시에 시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여성 예술가를 둘러싼 오래된 망령
SF작가로 유명한 조애나 러스(Joanna Russ)가 쓴 페미니즘 비평서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박이은실 역, 낮은 산, 2021). 원서(How to Suppress Women’s Writing)는 1983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사진: 우희준)
책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서 러스는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자, 여자가 무언가를 써 버렸다면 이제 어쩔 것인가?”
여성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비하하고 예술을 금지하던 ‘부도덕함’이라는 낙인을 겪으면서도 결국 해냈다.
러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무언가를 써 버렸다.
이제 어쩔 것인가?
뛰어난 여성 예술가는 이제 남성적 기질을 발휘한, “여자 이상”의 여자가 된다.
그렇다면 현재에 와서는 어떨까. 여성 예술가의 예술을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과거에 부도덕하다며 낙인 찍던 말들을 온건한 말투로 바꿔 말한 것뿐 아닌가?
현대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은 귀여운 경험담으로 치부되거나, 사생활에 국한되는 사적인 영역으로 내몰리거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축소되곤 한다.
결국 남성적인 기질을 품지 못한, 남근주의 사상 기반의 평론으로부터 평가절하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의 작품은 사소한 것이 된다.
뛰어난 것은 남성적인 것이므로, 여성 예술가와 떼어진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은 여성적이고, 숭고함은 남성적이라고.
이러한 오래된 신화들이 과연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가?
조애나 러스를 밟고 일어서기
예술과 비평은 공존하며, 서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발판이 되어준다.
러스의 뛰어난 비평 또한 그렇다.
진정한 비평과 예술이 만나 완성되는 순간은 언제나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조애나 러스는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데 사용된 11가지 방법을 분석하며 반어적으로 비판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전복적인 사유를 하게끔 이끈다.
필자는 여성 예술가로 활동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여러 비평을 마주하게 됐는데, 앞으로 내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은 암담했다.
예술가였던 러스가 작품활동을 접어두고 비평을 집필하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이유가 다 있지 않았을까?
러스의 말처럼, 예술이 공감력을 키워준다는 말은 상투적이다.
심지어 낡았다.
“우리(예술가)가 그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단, 예술을 단지 당신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로 취급하려는 충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극복할 때에야 그렇다.
그 첫걸음은 당신이 바로 예술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비평가는 무엇을 하는가? 적어도 예술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과 젠더를 찾고 자신의 세계관을 강화시키며 자아를 세우는 데에 빚지기만 하는 이를 비평가라고 할 수는 없다.
비평가들이 제도화된 차별주의 덕에 쉽게 저지르는 잘못과 실책들을 그저 너그러이 용서할 수가 없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재발견되고, 재진열되고, 재통합되기로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예술은 취미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노동이다.
조애나 러스는 뛰어난 비평가이기 전에 뛰어난 SF작가였다.
러스의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When It Changed)는 엄청난 논쟁을 일으키며 1972년 휴고상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여자남성〉(The Female Man, 1975), 〈그리고 혼돈은 죽었다〉(And Chaos Died, 1970), 〈알릭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Alyx, 1976), 〈그들 중 둘〉(The Two of Them, 1978) 등 젠더와 권력 문제를 관통하는 급진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가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
뛰어난 작가였던 그가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여성’ 예술가라는 현실을 통감하고 이를 고발하기 위한 책을 쓰는 데에 펜을 잡는 대신, 작품 활동에 온전히 몰두하여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를 대신하여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고 끌어올리는 이 책을 쓰는 데에 시간을 쏟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러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그가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펼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러스가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다음 시대의 여성 예술가인 나에게 이 글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는 또 다시 한 여성 예술가를 밟고 일어선 것이다.
여성 예술가를 밟고 일어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