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돌봄의 법➂ 서울로 이주한 트랜스젠더 B의 삶
서울시 청년허브 “청년의 미래, 도시 서울을 상상하는 [2019 N개의 공론장]” 중,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주최한 「법 밖의 가족이 겪는 차별의 긴 목록」 발표 장면. (가족구성권연구소 제공)    
[연재 소개] 2023년 생활동반자등록법이 발의된 후,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2024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 보고서 읽기 )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 가족에게는 받을 수 없었던 돌봄과 회복 서울에서 주거공동체를 이룬 B의 이야기   지난 기사에서는 가정폭력을 피해서 지방에 있는 집을 떠나 서울로 온 A의 삶을 들어보았다.
이번에는 역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한 B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두 사람 모두 1990년대생이며, 출생 시 여성으로 성별이 지정되었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이고, HRT(호르몬 치료)나 SRS(성별 재지정 수술)를 받지 않았다.
  B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겪었고, 얼굴 부위에 다수의 흉터가 남았다.
자라면서 여러 차례 흉터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한 수술을 받아야 했다.
B는 유년기부터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겪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학교 시스템과 공교육의 목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정신질환이 심해지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이주했다.
  하지만 유년기부터 타인과 관계 맺는 경험이나 기회가 적었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외모로 인해 겪는 일상적인 차별에도 노출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B는 불특정 다수와 일회성 성관계를 하기 시작했다.
B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원한다는 감각이 매우 중요했으나, 동시에 다른 또래들은 흔히 통용되는 연애 각본에 따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키워나가는데에 반해 불특정 다수와 섹스를 하고 다니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수치심이 있었다.
한편으로 연애를 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지만, 감정적인 요구가 좌절되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고통받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그 고통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B는 대학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면서 주거권 운동을 하던 친구가 만든 주거공동체에 들어갔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생활하며 함께 사는 구성원들과 서로를 돌봤다.
B의 감정 기복이 클 때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일부러 일정을 만들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생일파티, 엠티 등을 함께 열기도 했다.
B는 그 공동체에서 난생처음으로 그저 자기 자신으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다정함, 배려, 친절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을 타인에게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B에게 있어서 가족들은 B의 삶에 큰 영향을 남긴 자동차 사고를 함께 경험한 사람들이었지만, B가 사고와 안면장애를 받아들이고 세상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족들은 어떻게 하면 B를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로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거나, B의 고통을 방치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적정한 돌봄과 부양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B가 타인과 관계 맺고 돌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을 보다 나은 방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된 데는 주거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의 돌봄이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다.
  대도시의 익명성과 개방성이 필요한 트랜스젠더들… 그러나 적은 소득으로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 감당하기 어려워   그런 변화를 거치면서 B는 대학을 자퇴하고 이전부터 쭉 꿈꿨던 대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음식점 서빙, 활동지원사 일을 겸했다.
음악대학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개인 레슨을 받고, 비교적 긴 커리큘럼을 가진 학원도 수강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몇 년간 공부를 지속했다.
한편으로는 꾸준히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상담을 받았고,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면서 트랜스젠더 운동에 결합하기도 했다.
성소수자인 친구, 지인들과 느슨한 커뮤니티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삶을 꾸리면서도 음악인으로 미래를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B는 깊은 관계를 맺었던 연인과 헤어지고 난 후,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까지 모두 털어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
  국내에 있을 때 B는 음악을 공부하면서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활동지원사로는 총 2년 정도 일했는데, 활동지원사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여성이었고 연령대는 주로 50~60대였다고 했다.
근속기간이 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이용자나 센터와의 갈등 등으로 이용자를 1년에 1번 정도씩은 바꾸게 되었다고도 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자유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음악을 공부하면서 일하려는 B의 입장에서는 근무 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삶에 밀착되면서 정신적으로 소모되는 일이 잦았다.
결국 B는 돌봄 노동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학위를 딸 결심을 하게 됐다.
  SBS 이슈취재팀이 2020년에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거주하는 트랜스젠더의 65%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이는 전국 인구 대비 수도권 인구 비율(2023년)인 50.6%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실제로 트랜스젠더들은 서울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
대도시의 익명성, 가족과 기존 관계망으로부터의 이탈, 성소수자 게토 공간이 상대적으로 큰 규모로 존재하는 점 등이 수도권 지역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임차가구 RIR) 출처: 국토교통부 2023년도 주거실태조사 요약보고서     그런데 국토교통부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임차 가구의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중은 중윗값 기준 20.3%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은 22.7%로, 전국 기준 15.8%를 크게 상회했다.
서울 전월세 세입자들은 소득의 5분의 1 이상을 임대료로 지출하는 셈이다.
  가족으로부터의 배제와 사회적 차별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장시간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은데, 적은 수입으로 높은 주거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개별적인 사적 관계에 모든 것을 미룰 수는 없다   공동체, 관계, 돌봄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또 활동가로서 많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을 만나면서, 법적인 가족 관계 바깥에서 기존의 가족 제도로 포섭되지 않는 관계에 깊게 의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서로를 지지하고 돌보는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특정한 관계 특히 연애 관계를 비롯한 소수의 친밀한 관계가 한 사람의 삶에서 갖는 비중이 아주 커질 때 권력 관계가 발생하고 폭력이나 착취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미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특정 관계에 대한 높은 의존도, 동성 간의 관계를 포함한 이성애 관계 바깥에서 발생하는 폭력 피해에 대한 지원이나 인식이 부족한 현실 등이 피해자를 더욱 어렵게 하는 상황을 이따금 보게 되었다.
  B는 자신에게 성적 관계가 중요했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섹스 상대가 있다는 건 그래도 나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가족, 공교육 시스템에서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하지 못했으며, 대학 진학 이후의 관계에서 자신을 매력적으로 바라보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B에게는 누군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고 자신을 원한다는 감각 자체가 중요했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싶은 B의 욕구는 빈번하게 좌절되었다.
외양이 여성으로 ‘패싱’되는 상황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한국 사회의 낙인도 B를 힘들게 했다.
  그러다가 B는 유학 생활 중에 데이트 성폭력을 경험하면서 난생처음 법적, 제도적 지원을 받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서라면 성폭력으로 인정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B가 원하는 시점에 기소할 수 있고, 또 기소를 취소할 수 있다고 안내했으며, 의료 지원을 통해 거의 비용을 내지 않고 입원 등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유학 중인 학교에서는 과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주고, B가 충분히 치료와 돌봄을 받으면서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B는 결국 상대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의료 지원과 학교의 행정적 지원은 변함없이 이루어졌다.
  B는 데이트 성폭력 피해를 알리고 지원을 받을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유학을 간 국가에서는 “No means No가 상식으로 통용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게 왜 그런 사람을 만나고,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대신,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을 줄이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 환경 내에서, B는 처음으로 성폭력 피해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연대와 돌봄의 법〉 연재는 제도 바깥에서 만들어온 돌봄의 현장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제도 바깥의 돌봄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거나, 모든 문제의 해결책처럼 제시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와 같은 사적 관계에서 만들어낸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회적 차원에서 확보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계가 줄곧 제도 바깥에 놓여서 인지되지조차 못한 채 지워지거나 내버려지는 대신, 우리 사회가 이 관계들을 지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를 붙들고 버틴 ‘돌봄’이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확장되길   B의 경우 정신건강 상의 큰 어려움을 겪었고, 어린 시절부터 충분히 돌봄 받거나 공감받지 못한 와중에 주거공동체에서 돌봄을 받고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돌봄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만의 느슨한 공동체를 꾸릴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 A와 B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던 지역과 관계망을 떠나와 가족 바깥에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관계가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결핍과 어려움 속에서 서로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보았다.
간혹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관계로 흐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개별 관계의 명암과 별개로, 이러한 돌봄과 연대의 관계들은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 안에서 여전히 포섭되지 못하며,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개인의 탓으로 전가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이다.
  B가 떠난 후, 주거공동체는 결국 해산되었다.
주거공동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실무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운영해도 실무자에게 제대로 월급이 지급될 수 없었다.
하지만, B는 주거공동체에 불만이나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함께 살지 않고 흩어졌지만, 여전히 구성원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고, B는 주거공동체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지금의 삶을 꾸려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돌봄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죽지 않고 나로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버팀목 같은 것이었다.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서로를 붙들고 버틴 ‘돌봄’이 특정한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지거나, 시장의 논리에 맡겨지는 대신,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그런 돌봄과 연대가 청소년, 비국민, 약물사용자, 성노동자, HIV/AIDS 감염인, 구금된 이들도 누락하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필자 소개] 도균: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에서 운영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퀴어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를 함께 썼고, 팟캐스트 ‘젠더여행자’에 진행자로 참여했다.
서울살이 버팀목이 되어준 주거공동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