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정책 토론회 〈성소수자 인권, 새로운 민주주의의 출발선〉
2025년 5월 14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최로 〈제21대 대선 성소수자 정책 토론회 -성소수자 인권, 새로운 민주주의의 출발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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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소수자가 함께 동료 시민으로서 연대하며 함께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십시오. 성소수자와 그들의 지지자들은 끝까지 여기에서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세상이 올 때까지, 저의 청년 성소수자 친구들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올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입니다.
” -2024년 12월 6일, 국회 앞에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코코넛 활동가 발언 중
윤석열 퇴진 광장엔 셀 수 없이 많은 성소수자/퀴어가 무대에 올라 발언을 했다.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 정치인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는 나라, 종교의 이름으로 혐오 행위가 행해지는 이 나라에서 성소수자가 수만 명이 모인 광장의 무대에 올라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말 많은 이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2016년 박근혜 퇴진 광장에선 활동가 두 명이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발언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관련 기사 성소수자 시민들이 윤석열 퇴진 광장에 있었다! https://ildaro.com/10158)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 나온 성소수자들
광장의 모습은 바뀌었는데, 광장 이후의 정치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지난 14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주최하는 〈제21대 대선 성소수자 정책 토론회 -성소수자 인권, 새로운 민주주의의 출발선〉이 열렸다.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윤석열이)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발령된 제1호 포고령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태업·집회행위를 금하는’ 기득권의 언어는 모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특히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라고 말했다.
2025년 1월 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5차 시민대행진’이 열리는 집회 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는 무지개 깃발들과 트랜스젠더 깃발들. ©일다
“‘전통적’인 성 가치관을 흔들 수 있으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말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광장에 모일 때면 으레 듣는 이야기다.
지자체와 경찰은 사회 혼란과 공공안전, 미풍양속을 이유로 성소수자의 집회를 금지하기도 한다.
비상계엄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성소수자 시민의 삶을 어떻게 되었을까?”
성소수자는 민주주의 위기 상황을 그 누구보다 빨리, 민감하게 감지할 수밖에 없다고, 박한희 공동대표는 설명했다.
“성소수자 시민이 겪는 불안한 삶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 직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아무쪼록 동요하지 말고 안전한 곳에서 뉴스에 귀기울일 것과, 비상계엄으로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각자 연락의 끊을 놓지 말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을 겪는 성소수자이기에 더욱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시민이 광장에 나선 건, 평등하고 존엄한 사회를 위한 열망이다.
성소수자 시민은 촛불의 힘으로 이루어낸 박근혜 탄핵 이후 대선에서 또다시 성소수자의 존재가 ‘나중에’로 밀려나는 집단적 경험을 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 ‘더 이상 성소수자가 찬반의 대상이 되어서도, 평등이 밀려나서도 안 된다’라는 정치적 열망은 남태령 투쟁과 한남동 투쟁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이어졌다.
”
탄핵 광장은 성소수자뿐 아니라 여러 위치의 다양한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의 다름을 배우고 연대를 확장해 나갔다.
평등약속문을 함께 읽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박한희 공동대표는 “그렇기에 더 많은 성소수자가 혐오와 차별에 대한 불안감 없이 자신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라고 강조했다.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 연대를 외친 시민들
성소수자 당사자만이 ‘성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2025년 5월 9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개혁신당을 찾아가 〈제21대 대선 성소수자 정책 요구안〉을 전달하고, 이 정책과제들을 조속히 실현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요구안 수령 자체를 거부했다.
사진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의 모습.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의 시민 발언 1,233건을 분석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시민발언 연구팀’의 박상은 활동가는 “시민발언문에서 한 단어가 나왔을 때 어떤 단어가 같이 언급되는지 살펴봤을 때, 크게 두 개의 연결망 그룹이 있다.
”고 설명했다.
“하나는 헌법재판소, 사법부, 헌법, 민주주의, 최상목과 한덕수 등 계엄 전반에 대한 부분과 민주주의 파괴 문제를 짚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 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퀴어, 젠더, 여성혐오 등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광장에서 시민들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
더불어 시민 발언이 어떤 주제로 분류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 9개로 분류했을 때 “첫 번째 주제가 ‘연대와 평등 세상의 비전’이었다.
”라고 밝혔다.
박상은 활동가는 “이번 광장의 특징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참여와 그들의 주체성이 전면화되었던 것이며, 기존의 ‘우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를 우리로 다시 호명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소수자 시민들이 스스로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면서 배운 것들-‘내가 무엇을 느꼈고, 지금까지 무엇을 몰랐는지’를 이야기한 발언도 많았다.
”고 했다.
“자신의 기득권을 성찰하면서 횡단하는 연대를 제안한 시민, 여기에 오면 ‘모두의 자리가 있다’고 말한 시민 등. 남태령과 한남동을 거치면서 소수자 간 연대를 강조하고, 직접 겪은 경험을 말하는 발언도 있었다.
”
이런 광장의 경험은 성소수자에게 또 다른 경험으로 쌓였다.
박상은 활동가는 “많은 소수자들이 ‘광장에 나와서 치유 받았다’, ‘여기 나오니까 살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며 “이런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평균’과 ‘정상’이 과연 누구의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고 짚었다.
또한 “광장이 ‘민주주의 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평균인’들의 생활에서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던 이들이 광장에선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세상은 평균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그들에게 맞추게 되면 사실 그건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고 강조했다.
주요 공약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인권
2025년 5월 16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와 〈21대 대선 성소수자 정책 요구안〉에 대한 정책협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고 있는 대선 국면에서 또 다시 소수자는 밀려나고 있다.
사라진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탄핵 광장을 가장 뜨겁게 채운 존재들임에도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온 이들은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는 “광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고 단언하며 “‘사회 대개혁’이라는 과제를 마련하기 위해 시민들의 숙의를 거쳐왔지만, 그 과정이 무색할 정도로 성평등과 차별금지법, 그 외 성소수자 인권 과제는 각 정당 주요 공약에서 보이지 않는다.
”고 꼬집었다.
유일하게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이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필요한 공약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한 상황”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민석 대표는 “현재 민주당의 태도는 민감한 쟁정은 우선 피하고 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며 “광장의 목소리를 공약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
”고 말했다.
심지어 이런 모습은 과거에 비해 오히려 퇴행한 점이라고 우려했다.
정 대표는 “과거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만 해도 매거진 ‘버디’에서 유력 대선후보에게 성소수자 관련 공개 질의를 보냈을 때,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심정적으로 동성애 정서와 관련해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많지만, 차이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 안 된다는 입장은 분명하다’고 밝혔었다.
”며, 성소수자 관련 정책이나 입장에 대해 정치권의 반응은 “진보정당 외 선거 시기마다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란 세력을 청산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때 비로소 새로운 민주주의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는 정민석 대표의 지적이 정치권에 뼈아프게 가닿길 바란다.
광장의 ‘동료 시민’ 성소수자, 대선 정책에선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