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 조세영 감독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K-Number, 조세영 감독, 2024) 중 한 장면. 영화는 8세(추정)때 길에서 발견되어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김미옥) 씨의 친생부모 찾기 여정을 함께하며, 한국의 해외입양 역사와 구조를 들여다 본다.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케이 넘버〉는 2004년 국내 사회복지기관에 방문해 자신의 입양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해외입양인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서류의 복사본을 받고 싶다는 입양인의 요청에 복지회 담당자는 한국어로 된 서류는 전달할 수 없다며, 자칫 번역이 잘못돼 오히려 입양인에게 혼란이 될 거라고 한다.
재차 서류를 갖고 싶다는 입양인의 요구에 담당자는 그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원본도 아니고 고작 복사본인데 왜 안되냐 묻자, 그 서류는 “당신 게 아니라 우리 기관 기록물”이라며 거부한다.
입양인은 “이건 내 정보이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조세영 감독은 8세(추정)때 길에서 발견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미오카 밀러(김미옥)의 친생부모 찾기 여정을 함께하며 해외입양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영화는 입양인 개인의 가족 찾기에 초점 맞추지 않는다.
한국의 해외입양 시스템, 그 구조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국가 차원에서 많은 아이들을 해외로 ‘판매’한 과정,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는 진실들, ‘전통가족’과 ‘정상성’을 선망하는 이 사회가 배제시킨 사람들…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케일린 바우어(방소희), 선희 엥겔스토프(신선희), 메리 쉬라프만(전경희)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넘버’(번호)가 되어 한국에서 내보내진 이들의 이야기를.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2009)와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 이야기를 담은 〈자, 이제 댄스타임〉(2014)에 이어, 이번에는 해외입양인의 이야기를 따라간 조세영 감독을 만났다.
  - 전작들부터 〈케이 넘버〉까지, 모두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리와 연결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인 부분이었을까요?   무의식 중에 연결된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만들 때 관련 정보를 조사하고 그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여전히 어떤 궁금증이 남을 때가 있어요. 그게 결국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 해외입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2024)를 만든 조세영 감독.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2009)와 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 이야기를 담은 〈자, 이제 댄스타임〉(2014)을 만든 바 있다.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시간을 꽤 거슬러 올라가 2003~2004년 즈음이었어요. 당시는 페미니즘 잡지라 불리던 『이프』가 발행되던 때였고,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도 열렸죠. 저는 20대였고, 생계를 위한 촬영, 편집 알바를 이것저것 했어요. 시민운동단체, 여성운동 행사 등에서도 그런 알바를 했었고요. 어느 날 당시 유행했던 광고를 봤어요. “입양은 사랑입니다.
” 뭐 이런 거였는데, 원래 좀 삐딱한 사람이다 보니(웃음) 그 말도 의심이 되더라고요. 마침 입양 관련된 일에 촬영을 갔어요. 그렇게 알게 된 해외입양인이 있는데, 그가 일요일마다 보육원에 가서 자원활동을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한텐 이게 매주 교회가는 심정”이라고 했어요. 그의 어떤 감정이 전해졌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분이 입양기관에 서류를 받으러 간다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따라갔어요. 근데 시작부터 카메라를 전혀 못 찍게 했어요. 기관 담당자가 카메라도 막 치고, 그래서 열 받아서 더 찍고. 입양인이 원본도 아닌 서류 복사본을 좀 받고 싶다고 했는데도 절대 안 된다 그러고… 그 광경을 보면서 너무 이해가 안 됐어요.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싶더라고요. 이것에 대해 정보를 좀 찾고 싶었는데 답을 얻긴 힘들었어요. 그렇게 답답한 감정이 한 구석에 있었는데, 2018년에 우연히 추방된 입양인 기사를 보게 된 거죠. (참고: [단독]한국정부, 고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통계조차 없다, 프레시안, 2017년 7월 14일자) 해외입양인이 추방된 이유가 (입양된 국가의) 시민권이 없어서라는 것도 너무 이상하고… 답답해서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리서치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 영화에서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 간 한국 아이들은 대략 20만 명이 넘는다고 얘기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해외입양은 진행되고 있죠. 한국 사회에선 입양에 대해 희생을 무릅쓰는 일, 고귀한 일 등 대체로 좋은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 같아요. 심지어 해외로 입양을 가면 더 잘 됐다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고요 .   입양을 하는 부모들의 대개는 좋은 마음으로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쉽게 변할 수 있고, 흔들릴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최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한국에선 본질적으로 한 아이를 입양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건지 논의가 없다는 거죠. 계속 ‘사랑’ 타령만 해요. 제대로 된 논의도, 체계도 없어요. 주먹구구식이죠. 지금까지도요. 해외입양 관련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가정법원에서 서류를 한번 검토한다는 것 뿐이에요. 그 외엔 여전히 입양기관에서 대부분 결정하고 있죠.   한국은 아직 헤이그 국제아동입양 협약(국제입양으로 국가를 이동하는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입양에 의한 유괴와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국제입양의 절차와 요건을 규정하기 위해 1993년 5월 29일 헤이그국제사법회의가 채택하고, 1995년 5월 1일 발효한 다자간 협약으로, 현재 당사국은 104개국이다)의 당사국이지만 여전히 협약에 비준하지 않았어요. 영화 마지막에 나오지만, 한국은 비준을 위한 추가적 이행 입법 마련을 12년째 하고 있죠. 10년 넘게 준비만 하고 있다는 거예요.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 포스터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만들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건, 해외입양인들 중엔 백인 가족에 입양된 경우가 많은데, 그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겪는 인종차별을 인지하지 않는다는 점이예요. ‘내 아이니까, 내 자식이니까. 너도 백인’이라고 대하는 건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래서 입양인 중엔 자기혐오를 경험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자신을 정말 백인이라고 생각해 오다가 다른 입양인을 만났을 때 오히려 불편해 하죠. 어떤 분은 처음 입양인 모임 갔을 때 한국인 입양인이 가득한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다시는 모임에 안 갔대요. 그랬던 분이 지금 한국인 입양인을 남편으로 두고 있지만요.   - 해외입양인을 만나고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끼게 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오히려 해외입양인들을 만나면서 한국인 정체성을 좀 갖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엔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 나를 ‘토착 한국인’이라 불러요. 해외입양인을 만나고 그들과 입양기관에 가서 본 일이 왜, 무엇이 이해 안 됐을까 생각해 보니까, 내가 토착 한국인이어서 그랬더라고요. 토착 한국인이 한국 입양인이 겪는 불합리를 처음 봤던 거죠.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런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그걸 개념화하게 된 것 같아요. 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고, 그 외에도 ‘코리안 어메리칸 입양인’ 등 다양한 한국인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내 세계의 무언가가 갈라지고 균열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내 위치가 조금 더 분명해졌고요. 그리고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들여다 보니까, 내가 (해외입양의 구조와) ‘연루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안 하면 뭐가 바뀌지? 그냥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 영화를 보면 해외입양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여러 불합리를 겪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보호하기보다 그들을 ‘수출’하기 바빴어요. 어렸을 때 이미 한국 사회에서 배제 당했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배제를 경험해요. 입양인들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무엇이 가장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셨나요?   특정한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해외입양도 그렇고, 이전 작품들에서 임신중절과 성폭력 이야기를 다뤘을 때도 그랬지만,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전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뭔가 이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뒤에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의식이 있든 없든 안 좋은 방향으로 숟가락을 얹는 사람들이 있죠. 방관하는 이도 있고, 냉담하거나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가해하는 사람을 두둔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계속 (불합리한 문제가) 쌓이는 거죠. 그래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특정한 무언가가 있다고 답할 순 없어요. 전 대중 영화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최고의 빌런이 나오고 그를 처치하는 걸로 속 시원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 해외입양인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아이들을 이렇게 보내고 여전히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출생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것의 끔찍함을 느껴요.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죠.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 스틸컷들. 미오카 밀러(김미옥) 씨는 한국인들이 수십 년 간의 해외입양에 대해 실제로 알고 있고 있는지 묻는다.
(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해외입양과 관련된 기록이 정말 다 엉망진창이예요. 최근에 보도된 자료들을 보면, 여전히 기록물 보관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애초에 원본을 쓸 때 잘못 쓴 것도 있고, 1990년대에 그 수기를 데이터화 할 때 잘못 입력한 것도 있는데, 그에 대해 감수를 제대로 안 한다는 거예요. 제가 이번에 영화 만들면서 최종본을 만들기까지 20번을 돌려봤는데 볼 때마다 오타가 나오더라고요. 그 정도로 감수는 꼭 필요한 건데, 그걸 안 했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 들려오는 얘기를 들으니까 이 기록물도 어느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 냉동 창고에 넣어놨대요.   - 토비아스 휘비네트(이삼돌) 연구자가 한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의 해외입양 시스템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 문제의 유사점을 짚는 부분이요. 개인적으론 성매매 집결지 문제도 떠올랐는데요. 한국 사회의 지독한 여성혐오, 여성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어요 .   토비아스 씨가 한 이야기는 저도 굉장히 좋았어요.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가 보는 관점이 아닌 훨씬 더 포괄적으로, 더 다양한 시각에서 한국의 문제들을 보더라고요. 영화 만들면서 오히려 그들에게서 한국사를 배웠다고 생각해요. 토비아스 씨가 지적하잖아요. 한국의 “문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빠르게 사람들을 속이고, 모집하고, 팔아 넘기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요. ( ※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성장한 토비아스 휘비네트 박사는 해외입양을 둘러싸고 ‘한국의 민족주의’와 ‘서구의 식민주의’를 읽어내며, ‘강제된 이주’라는 점에서 인신매매의 성격도 지닌다고 지적한다.
) 이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고 봅니다.
  - 영화 속에서 입양인이 묻죠. 해외입양 관련 일을 하지 않는, ‘평범한’ 한국인은 해외입양과 입양인에 대해 얼마냐 아냐고. 입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이 계속 남더라고요 .   영화 하나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근데 제가 〈자, 이제 댄스타임〉을 만든 게 2013년이고, 개봉을 2014년에 했거든요. 그때 임신중절은 ‘불법’이었지만, 6명의 여성이 얼굴을 드러내고 영화에 나왔죠. 그때도 이 영화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근데 몇 년 뒤인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됐죠. 물론 지금도 대체 제도가 없는 공백 상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낙태죄’는 사라졌잖아요. 그 선고가 나왔을 때 ‘나도 조금 일조한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영화를 본 사람의 숫자는 적지만, 그 사람들이 주변에 말했을 거고, 또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달했을 수 있죠. 영향력이 점점 커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번 영화도 그런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해요. 영화 자체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겠지만, 이 영화를 본 한국 관객들이 분명 어떤 반응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런 관객의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이 영화가 관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결국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게 5년 후일지, 10년 후일지 모르겠지만요.
‘번호’로 떠난 아이들이 입양인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