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법률로 포괄적 성교육 규정하지 않은 건 한국 외 3개국뿐
2025년 5월 9일, 서울 전교조회관에서 열린 〈포괄적 성교육 법제화 토론회〉 현장. (주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국다양성연구소,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기본소득당,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 주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난 3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국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은 ‘평범한’ 13세 소년 제이미가 같은 반 여학생을 살해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이미가 여성혐오를 어떻게 습득하며,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학교와 사회와 가족은 왜 이 문제를 놓쳤는지 보여주면서, 지금의 남성 청소년 문화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학교 중등교육 과정에 이 드라마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와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의 또래 문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성교육을 하고 있을까? 성 엄숙주의와 보수주의에 갇혀 쉬쉬하는 성교육에서 벗어났을까? 여성혐오와 인셀(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금욕’의 합성어로 여성과 연애나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남성을 칭하며, 자기연민과 여성에 대한 적대감과 공격성을 보임) 문화를 분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적 노력을 하고 있을까?
“디지털 성착취, N번방, 온라인 그루밍이 매년 이렇게 발생하고 있는데, 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걸(성교육) 학교 자율에 맡기고 있나?”
지난 9일, 서울 전교조회관에서 열린 〈포괄적 성교육 법제화 토론회〉에서 유화정 젠더-경계너머연구소 공동소장은 이같이 말하며 학교 성교육 현실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한국은 포괄적 성교육을 부정하는 몇 안 되는 OECD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OECD 38개 가입국 중 법률로 포괄적 성교육을 규정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 외 3개국뿐”이라는 것.
스웨덴 교육, ‘성평등’과 ‘다양성 존중’ 관점이 모든 교과목에 담겨
유화정 공동소장은 “한국의 성교육은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15시간에 멈춰 있다.
”며 “사실상 의미도 없고, 표준도 없으며, 전문성도 없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그에 반해 “핀란드·영국·호주 등은 이미 법적 근거, 표준 커리큘럼, 교사 훈련 및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고 했다.
또한 교육의 내용은 “단순히 (성)건강을 넘어서 비폭력 문화, 젠더 정의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 스웨덴의 경우, “1955년부터 성교육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화되었으며, 2010년 교육법 개정으로 전 교과목에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유 공동소장은 “사실상 교과서의 성 주류화가 핵심”이라 설명했다.
또한 “2022년 전면 개정을 통해 기존의 ‘성과 동의’ 지식 내용을 확장하고, 명칭을 ‘성, 동의 및 관계’로 변경”하며 “성/동의/재생산권 보장에 대한 강조”했다.
유화정 젠더-경계너머연구소 공동소장의 “해외 사례로 본 포괄적 성교육 법제화의 방향” 발제 내용 중
교육 과정을 살펴보면 “섹슈얼리티, 재쟁산, 정체성, 종교적 표현의 자유, 디지털을 대하는 태도 등 굉장히 다양한 과목에서 다양한 주제가 잘 녹아있다.
” 유화정 공동소장은 “스웨덴의 성교육은 일반 교과목 안에서 성평등과 다양성 존중 관점에 기반하여 통합적으로 이뤄진다.
”고 강조했다.
“성교육을 위해 따로 시간을 빼서 어떤 걸 만든다기보다, 그냥 교과목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는 것.
보수진영의 반발 있었지만, ‘포괄적 성교육’ 실시한 영국
영국의 경우엔 “종교와 보수적인 분위기로 학부모들의 반발이 꽤 심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포괄적 성교육 체계를 마련했다.
“현재 영국의 학교 성교육은 2019년의 교육부 지침 하에 학교 자체적으로 세부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관계 교육’(Relationships Education, 초등학교), ‘관계와 성교육’(Relationships and Sex Education, 중고등학교) 및 ‘건강 교육’(Health Education, 초중고)로 구성되어 있다.
”
반발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의 부모(또는 보호자)는 자녀의 성교육 일부 또는 전체에 대한 학습권을 거부할 수 있다”는 부분이 마련됐지만, “이 과정은 학교 교장과 협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부모는 반드시 자녀가 학교의 성교육을 받지 않는 대신 가정 내에서 대체할 수 있는 성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리고 영국은 “2010년에 제정된 평등법(Equality Act)을 근거로, 개인의 정체성(국적, 민족성, 언어, 계급 등)과 함께 LGBT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유화정 공동소장은 “반면, 우리 나라의 성교육은 성(gender)에 대한 부정확한 번역과 해석으로 인해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강조하며,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고 비판했다.
이를 개선하려면 “국내에서 오랫동안 제기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대만 ‘성평등 교육법’ 시행, 프랑스 ‘유아기부터 성교육’
아시아 국가인 대만도 포괄적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대만의 성평등 교육의 법적 근거는 2004년 ‘성평등 교육법’(Gender Equity Education Act, GEEA) 제정 이후 확립되었다.
” 유화정 공동소장은 “대만의 성교육은 독립적인 교육 과정이 아니라 인권, 다문화, 성교육을 함께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다.
또한 교육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생물학적 성별, 성적 지향, 성별 특성 및 정체성,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젠더와 다문화까지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고 설명했다.
WHO(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 내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질문과 답변 (https://www.who.int/news-room/questions-and-answers/item/comprehensive-sexuality-education)
유 공동소장은 “대만은 아시아 국가로서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며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가부장제적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성 관련 사건이 기폭이 되어 교육법이 대대적으로 개편된 것은 유의미하다.
”고 분석했다.
최근 대만 교육부와 행정원은 “성평등 중요 문제 추진 프로젝트로 ‘사이버 및 인터넷 성폭력 예방’을 시행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또한 프랑스는 “올해 9월부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성교육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며, 새로운 성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유아기부터 성교육을 시작함으로써 아동의 자기 인식, 감정 표현, 타인 존중 등의 사회적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성평등을 마련하고 성차별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화정 공동소장은 “이런 프랑스의 접근은 WHO(세계보건기구)와 유럽연합이 권장하는 포괄적 성교육 기조와 부합한다”고 짚었다.
포괄적 성교육은 아동·청소년의 권리, 선택이 아닌 필수
유화정 공동소장은 “많은 국가가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으로 발 빠르게 개정하고 변화에 힘쓰고 있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 ‘성교육 시간에 어떤 교재를 쓰면 (안)되느냐’, ‘학부모의 반말이 있었냐’ 이런 것들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런 현실이니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교에서 배운 성교육 내용을 물어보면, 대부분 학생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루했다’, ‘별 내용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 옛날 이야기를 해 주는 것 같았다’는 평가가 99%다.
”
유화정 젠더-경계너머연구소 공동소장은 “법적 기반이 없는 성교육은 지역별·학교별 편차를 초래하며, 교육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법제화를 통해 국가가 교육의 최소 기준을 보장하고,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것이 “권리 기반 교육의 실현, 아동·청소년의 권리 보장”이라고 강조했다.
“UNESCO(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WHO(세계보건기구), UNCRC(유엔 아동권리협약) 등은 성교육을 아동의 권리로 명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이러한 국제 협약의 당사국이다.
세계는 권리 기반 포괄적 성교육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성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보건이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교육자, 학부모, 입법자, 청소년이 함께 만드는 변화가 필요하다.
”
‘인셀 문화’ 타파할 포괄적 성교육 법제화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