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측, ‘대학과 독립영화관이 혐오에 굴복한 것’ 인권위 긴급구제 신청
2025년 5월 14일, 서울 향린교회 대강당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이화여자대학교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대관 거부를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다     “불허된 것은 공간이 아닌 존재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2025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부에 부쳐.”   5월 2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서의 제목이다.
올해 6월 20일 개막 예정인  한국퀴어영화제를 준비하며 대관 협의 중이던 아트하우스 모모(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는 독립예술영화관)로부터 4월 30일, 대관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고 항의하는 성명서였다.
  극장 측은 “이화여자대학교에 다수의 민원이 접수되었고, ‘기독교 창립 이념에 반하는 영화 상영은 학교 내에서 허용할 수 없다’는 학교 측의 입장에 따라 더 이상 대관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히며 대관을 거부했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작년 6월 15일과 16일 한국퀴어영화제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5월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 향린교회에서 “이화여자대학교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대관 거부를 규탄”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 활동의 자유 침해하고, 소수자 억압한 것 ‘기독교 이념’ 운운하며 민주주의 원칙을 흔드는 행위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 3월 10일부터 극장 측과 대관 일정을 조율하며 협의를 시작했고, 3월 25일엔 대관 견적서를 수신한 뒤 계약금과 잔금 등 납부 일정을 포함해 대관 계약의 모든 협의를 마쳤다.
이에 4월 28일, 극장 측은 최종 계약서를 조직위로 발송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극장 측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했다.
  신효진 집행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이화여대의) ‘기독교 창립이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아트하우스 모모는 교육기관 내에 위치해 있더라도 시민에게 개방된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공공적 기능과 책임을 지닌 장소”임을 짚었다.
“외부 민원과 압력에 따라 이미 진행 중이던 절차를 중단하고, 특정 정체성을 이유로 상영을 거부한 이번 결정은 이 공간이 마땅히 지녀할 공공성과 예술적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2025년 5월 2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 “불허된 것은 공간이 아닌 존재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아트하우스 모모의 2025 제25회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거부에 부쳐” 이미지     또한 “이번 사태는 단지 ‘대관이 허가되지 않은 사건’이 아니”라며, “표현의 자유, 문화예술 활동의 자유, 그리고 소수자 존재 자체에 대한 억압의 구조가 드러난 사건”이라 명명했다.
신 집행위원장은 “이번 일은 퀴어영화제라는 개별 행사의 존폐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 전반에 여전히 만연한 소수자 혐오의 구조적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 혹은 이념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표현 검열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원칙을 흔드는 행위”라며, “혐오가 제도와 공간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사회는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으며,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침묵과 배제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모든 시민에게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혐오 민원에 굴복하는 대학과 예술공간, 괜찮은가?   손희정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혐오를 내세우는 악성 민원에 굴복하는 대학을 비판했다.
손 교수는 “작년 12월, 세계적인 석학이자 책 『젠더 트러블』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 교수가 방문했을 때도, 강연을 반대하는 민원이 쏟아지자 경희대학교가 난색을 표했던 일”을 언급했다.
“민원의 이유는 버틀러 교수가 소아성애와 근친상간 합법화를 주장하여 한국인을 타락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실이 아닌 거짓 선동이고 마타도어(정치적 목적의 흑색선전)에 불과했지만, 악성 민원이 계속되었고 결국 대학 밖에 장소를 마련해 강연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손희정 교수 또한 이번 사태가 단지 혐오세력의 또 다른 ‘악성 민원’ 사건이 아니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란과 극우 개신교의 증오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어떻게 만나는지, 지난 다섯 달 동안 여의도와 광화문, 용산과 거리 위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이렇게 반문한 손 교수는 “이런 위협으로부터 대학 역시 자유롭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협박 민원에 굴복함으로써 상황을 방조하거나 더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와 자유롭고 광활한 사회의 공간을 제공해야 할 대학이 악성 민원 앞에서 교육기관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그야말로 붕괴다.
” 손희정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대학이 외부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그 역할을 다해 스스로의 존엄과 사명을 지키기를 요청한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기독교학과·신학대학원 학생과 졸업생들 ‘혐오는 기독교 정신 아니야’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전도사라고 밝힌 홍다은 씨는 “이화에서 배운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고 발언했다.
그리고 “한국퀴어영화제의 아트하우스 모모 대관이 이화여대 창립 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반한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속상하고 수치스러웠다”고 밝혔다.
이화여자대학교 내 붙은 대자보 모습. 2025년 5월 8일, 퀴어와 연대하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신학 공동체 123인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퀴어영화제 대관 거부 사태에 대해 이화여대와 아트하우스 모모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다.
(제공: 김유미)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밖으로 내모는 폭력은 기독교의 정신도, 이화의 정신도 아니다.
이화의 창립 이념도, 기독교 정신도 혐오와 배제일 수 없다.
”고 말한 홍다은 씨는 “예수님은 차별과 배제와 싸웠고, 이화여대는 줄곧 가부장주의의 여성혐오와 싸우지 않았냐”라고 반문했다.
    5월 8일에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일반대학원 기독교학과, 신학대학원 재학생 및 졸업생 또한 입장문을 냈다.
“성서를 관통하며 시대에 구애 받지 않는 진리, 즉 기독교 정신은 명확하다.
당대의 편견으로 ‘죄인’이라 낙인찍힌 자들과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사는 것(마가복음 2장 13절~17절),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쉴 곳을 마련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걸어야 할 길, 즉 기독교 정신이다.
(레위기 19장 33절~34절)” 이렇게 지적하며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삶은 연대와 환대의 삶이지, 성서의 특정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삶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기독교 정신을 깊이 훼손하는 일”이라 강조했다.
  “한국퀴어영화제, 거절당한 이유를 묻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5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신효진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극장 측으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싶고, 무엇보다 대관이 거부된 것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듣고 싶다.
”고 했다.
‘기독교 정신’과 민원 등을 얘기했지만, 어떤 민원이 어떤 식으로 전달되었고, 그 민원에 대해 이화여대와 극장이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쳤는지, 대관 취소까지의 과정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퀴어영화제 측의 지적대로, 이번 대관 취소 사태는 단지 성소수자 혐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혐오에 기반한 악성 민원이 혐오를 확산시키고, 사회가 그에 굴복하는 일은 ‘성평등 교육’ 반대, ‘집게손가락 논란’과 페미니즘 사상 검증 등으로도 이어져왔고, 민주주의를 위협해왔다.
광장 이후,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 때야말로 더 이상 혐오와 위협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경고하고 있다.
이화여대 내 극장의 퀴어영화제 대관 취소 사태, “민주주의 훼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