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돌봄의 법① 소수자들의 돌봄과 연대의 경로를 드러내자
가족구성권 운동은 가족제도를 둘러싼 시민들의 위계를 문제삼고, 차별 받고 취약한 사람일수록 가족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시설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대안을 모색한다.
‘시설사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장애여성공감 엮음, 2025 개정판, 와온)에 실려 있다.
    ©일다 [연재 소개] 2023년 생활동반자등록법이 발의된 후,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2024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 읽기)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총 10회 진행되는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연대와 돌봄이 절박한 이들은 누구인가?   연대와 돌봄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절박할까? 고립감을 느껴본 적이 없거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닐 수도 있겠다.
물론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서 생애 과정에 누구나 언젠가는 고립감을 느끼고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그런 경우를, 그런 사람을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영유아, 장애인, 환자, 노인이 느끼는 ‘특수한 필요’라는 관점으로 돌봄을 편협하게 배치한다.
  ‘정상성’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연대는 돈이 안 되는 일에 오지랖을 부리는, 역설적으로 사치를 부리는 행위가 된다.
능력이 있는 자들은 자선을 베푸는데, 능력이 없어서 자립을 못해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존하며, 계속 그렇게 살게 하는 잘못된 해결책이란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는 신화적인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이제 알 사람은 다 안다.
정상성을 욕망하기보다 나답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삶의 지향과 방식을 가다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차별 받고 소외된 이들이라고 해서 연대와 돌봄의 달인인 것은 아니다.
연대와 돌봄에 대한 낙인과 오해로 인해, 돌봄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하거나, 돌봄을 하는 것을 존중받지 못하기 일쑤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누군가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거나, 그로 인해 나의 생존까지 위태로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복잡한 착취의 구조 속에서 돌봄자와 돌봄 대상자 사이에 가해와 피해의 경험이 얽혀들기도 한다.
차별과 소외는 빈곤과 필연적으로 만나 사람들의 사이를 갈라놓기 십상이고, 내가 누구와 어디에서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요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자들은 살아간다.
자신과 타인, 비인간을 돌본다.
가족과 기관, 학교와 직장이라는 공적 제도적 관계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은 혼자 있지 않고 관계를 맺는다.
돌봄과 연대가 특정한 제도로 환원되거나 일시적이고 선택적인 시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빈곤하고 차별받는 이들의 삶의 자리에서 돌봄과 연대의 양상이 어떻게 일어나고 좌절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삶의 현장에서 길어올린 대안적 방향이 법과 제도에 반영되어야 하고, ‘정상성’의 위계가 흔들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법제도로부터 자립해서 살아갈 힘을 키우고, 한편으로 법제도를 견인해나가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삶은 살아가는 동안 중단될 수 없으니까.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 발표회가 2025년 2월 14일, 강북노동자복지관 강당에서 열렸다.
가족구성권연구소,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 주최했다.
(필자 제공)     가족 밖에서 ‘요보호자’와 ‘우범자’라 불리며 생존해온 사람들   한국사회는 가족을 떠나서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명제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가족 ‘밖’에서 생존해온 많은 소수자들은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국가는 이들을 오랫동안 “요보호 대상”으로 부르며 시혜적인 복지제도를 제공했고, 이러한 국가의 보호를 거부하거나 보호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우범자”로 분류했다.
국가가 사회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관리의 측면에서 필요없거나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시설에 수용하거나 국경밖으로 밀어내는 쪽으로 공권력을 사용해왔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로 인해 ‘멀쩡한’ 가장이 길에서 살게 되자, 가족 해체를 방지하기 위한 소위 일반적인 복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시혜화와 범죄화에 저항해온 소수자들의 계보를 기억하고, 이들의 저항과 도전이 무엇이었는지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
  빈곤 운동은 오래 전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주거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도둑질과 같은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들을 가혹하게 구속(도주 우려 등의 사유로)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복지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명분으로 수급자들을 언제나 부정한 대상으로 의심하는 것이 모욕감을 주고, 제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구걸 행위 자체를 범죄화하거나, 공공장소에 눕지 못하게 하는 조례를 만들려는 정치적 시도에 대해 저항해왔다.
  우리 역사에서 가족 밖 여성과 성소수자는 ‘성적으로 문란하여 사회와 가족 질서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단속을 받아왔다.
가출한 여성은 ‘윤락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수용됐다.
트랜스젠더는 지정된 성별과 다른 복장을 하고 공공장소에 나타났다는 이유로, 일부는 유흥업소에 일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단속당하고 구금되었다.
불법적인 금전거래라고 여겨지는 성노동과 노점은 행정의 필요에 따라 용인되거나 단속되었고, 거기서 발생하는 피해는 그 현장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전가되었다.
  ‘낙태죄’가 폐지되기 이전에는 임신을 중지한 여성만 처벌되었으며, 형사적 처벌뿐만 아니라 혼외 임신을 한 경우 성적 낙인이 부과되어 사회적인 처벌까지 경험했다.
한국의 여성들은 특권층이 아닌 이상,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임신을 중단하는 것도, 출산하여 양육하는 것도 삶의 큰 위기를 만들어내는 사건이 되어야만 했다.
현재 비범죄화된 상황에서도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보편화, 공공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 상황, 체류 지위, 나이, 장애 등에 따라서 불법적인 상황에 연루되거나, 건강 상의 위해를 경험하고,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등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1960~1970년대 부녀보호소는 성매매 여성과 ‘부랑소녀’들을 수용하였는데, 외출이 금지되어 여성들은 이곳을 감옥으로 인식하였고 탈출 시도가 이어졌다.
위 장면은 197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큰영애(박근혜)가 시립부녀보호소를 격려 방문’하는 모습을 찍은 공보처 사진이다.
1970년대 시립부녀보호소는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부랑자, 연고 없는 노인 등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뒤늦게 알려진 ‘여자 삼청교육대’ https://ildaro.com/8768 (출처: 국가기록원)     최근 영국 범죄사법정책연구소가 펴낸 〈세계 여성수감자 보고서〉와 국제형벌개혁연구소의 〈벽을 넘어선 여성〉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과 학대, 성차별적 법률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수감된 여성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임신중지, 동성애, 복장 등을 제한하는 법률이 여성의 투옥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생계나 가족 부양을 위해서 성노동을 하거나 마약을 판매한 이들도 ‘빈곤에서 비롯된 행위’로 체포, 구금된 요인으로 분석했다.
(관련 기사: ‘감옥에 갇힌 여성 수, 남성보다 두 배 빨리 늘어…성차별의 이유있다’, 경향신문, 2025-3-13)   가족구성권 운동, 가족 문제를 정치화한다는 것은   한국의 가족제도는 일제시기 확립된 호주제로 인해 오랫동안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제도가 되어왔다.
시민들의 실질적인 가족 관계를 반영하지 못한 채 성별, 나이, 가족결합 과정 등의 사유에 따라서 위계를 나누고, 부계혈통을 중심으로 권리를 행사하도록 만들었다.
호주제도 안에 안전하게 자리잡지 못한 이들은 수많은 사회적인 차별을 감당해야 했다.
  국가는 정책적 기조에 따라 가족계획을 위해, 경제성장을 위해 개인과 가족의 몸과 시간을 침해해왔다.
1960~1980년대 경제성장의 시기에는 모든 가족을 경제성장을 위해 동원하고, 2000년 이후 본격화된 저출산고령화 현상에 대응한다면서 일부 돌봄을 서비스로 만들었지만 혼인과 출산에 대한 압력을 통해서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차별과 위계를 강화했다.
  가족 문제를 정치화한다는 것은 ‘정상성’과 성장주의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페미니즘, 퀴어 운동, 비판적 장애운동, 이주운동 등과 제대로 만나야 한다.
가족구성권 운동은 국가가 어떻게 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친밀한 관계들을 침해하지 않고 차별을 제거해나가도록 할 것인지 모색한다.
또한 가족 상황이 시민권을 획득하는 자격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인정과 분배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질문한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며 한국 사회에서도 가족 변화에 대한 열망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분등록제로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되고, 호주제 폐지와 경제 위기로 가족이 해체된다는 위기감 속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되며, 저출산 해소 해법으로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면서 그러한 기대는 무참히 꺾였다.
‘정상성’과 주류 문화에 흡수시키는 ‘동화주의’를 노골화하며 가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교육현장에서도 노동시장에서도 주거정책에서도 배제된 이들은 어떤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한국의 가족제도는 일제시기 확립된 호주제로 인해 오랫동안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제도가 되어왔다.
호주제도 안에 안전하게 자리잡지 못한 이들은 수많은 사회적인 차별을 감당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책 『가족신분사회 - 호주제 폐지 이후의 한국가족정치』 (가족구성권연구소 저, 2025, 와온)에 실려 있다.
    가족구성권 운동은 빈곤을 처벌하는 시스템과, 가족제도로부터 보호가 철회된 ‘요보호’ 여성과 아동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구조에 대항하며, 장애인과 미등록이주민을 시설로 격리하는 것에 저항하는 운동과 함께하면서, 가족제도로부터 보호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다.
가족제도를 둘러싼 시민들의 위계를 문제삼고, 차별 받고 취약한 사람일수록 가족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시설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대안을 모색한다.
  사회적 재생산의 장소와 경로를 드러내기   처음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만들기로 했던 때를 상기한다.
생활동반자등록법 하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법의 언어로는 아직 담아낼 수 없는, 복잡한 쟁점이 얽히고 설키고, 통계적인 숫자로 입증하기 어려운, 기존의 복지제도에 가닿고 싶어도 닿지 못했던 이들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당연히 혹은 무심히 써왔던 권리의 언어를 갱신할 필요를 느꼈다.
  돌봄과 연대는 가족이 없는 이들을 위한 잔여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했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그 근거가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은폐된 삶의 현장 속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와 관계성이 만들어지는 장소에 주목했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어떤 하나의 정체성 범주로 환원되지 않는, 때문에 특정한 제도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삶 속의 연대와 돌봄의 경로를 드러내고, 사회적 재생산의 지리(地理, geography)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차별적 보호나 시혜적 구제가 아니라,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된 존재와 관계를 지향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 소개] 나영정(타리) . 가족구성권연구소,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퀴어팔레스타인연대, 연구모임POP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족신분사회』, 『수용, 격리, 박탈』, 『시설사회』,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Crip Genealogies』 등을 함께 썼다.
‘가족 밖에서도 살만한 삶’을 위한 방법을 발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