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극작가협회 ‘토론연극’를 통해 연극계 괴롭힘을 논의하다
왼쪽은 하나사키 세츠(花崎攝) 배우, 연출가, 워크숍 퍼실리테이터. 일본에 토론연극을 확산시키는 활동을 한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으로 유명한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의 이론과 실천을 기록한 책을 번역 중이다.
오른쪽은 사카모토 린(坂本鈴)극작가, 연출가. ‘극작가 여자모임.’ 리더. 일본극작가협회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위원장.     일본에서도 연극계의 성폭력과 위계폭력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일본극작가협회가 ‘연극 현장에서의 괴롭힘을 생각하는 토론연극’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2023년 여름에 이어 2024년 12월에도 2회 진행. 이 기법이 괴롭힘 방지에 어떤 효과가 있을까. 토론연극의 감수와 퍼실리테이터(진행자)를 맡은 하나사키 세츠 씨와 극작가 사카모토 린 씨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정리: 시미즈 사츠키]   관객이 무대에 개입해 변화를 꾀하는 ‘토론연극’ 연극계 내 괴롭힘 방지에 효과적인 도구될까   사카모토 린(坂本鈴) 씨가 리더를 맡고 있는 ‘극작가 여자모임.’은 2023년에 연극계에서 위계 폭력과 성폭력을 없애기 위해 ‘지속가능한 연극을 위한 헌장’을 만들었다.
헌장에는 폭력-괴롭힘 행위 금지, 재발 방지, 안전한 창작환경을 만들 것 등의 내용을 담았다.
(관련 기사: ‘극작가 여자모임.’ 지속가능한 연극을 위한 헌장 https://ildaro.com/9697)   사카모토 씨는 그 노력을 인정받아 일본극작가협회의 컴플라이언스 조직(회사나 기관 내에서 법률, 윤리, 내부 규정 등을 지키도록 관리·감독하는 부서나 체계)인 ‘일본극작가협회 괴롭힘 방지 계발 워킹그룹’에 참여, 토론연극(Forum Theater) 시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토론연극’이란,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사회 문제를 고민하며 사회 변혁을 위한 참여형 연극 기법이다.
브라질 출신의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이 1970년대에 고안했다.
피억압자가 스스로 사회 문제와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배우와 관객이 공동으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연습’을 하는 연극 형태로, 세계 70개국 이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극작가협회가 지금까지 진행한 두 번의 토론연극은 극작가들이 대본을 쓰고 직접 연기했다.
  토론연극의 방식은 매회 하나의 연극을 두 번 공연한다.
처음엔 문제가 산적한 ‘안티모델’. 두 번째도 같은 극을 공연하지만 관객이 “그 발언(행동)에는 문제가 있다”, “나라면 저 부분을 바꾸고 싶다”고 손을 들어 공연을 멈추게 하고, 의견을 말하고, 배우를 대신해 자신의 제안을 무대 위에서 연기한다.
제안된 방식의 효과를 배우와 관객이 대화하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진행을 맡은 하나사키 세츠(花崎攝) 씨는 약 20년 전 세계여성의날에,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인 장에서 토론연극을 시도한 적이 있다.
  작년 12월 공연의 ‘안티모델’의 주인공 캐릭터는 처음으로 큰 극장에서 공연하게 된 극단의 대표. 연습 첫날 상견례 장면으로 시작한다.
극단의 남성 극작가가 젊은 여성 배우를 오디션에서 뽑고 대사를 배우에 맞게 수정하고 있다.
여성 연출가는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고 화를 내고, 남성 극작가는 배우에게 성적인 요구를 하는데... 대본이 좀처럼 완성되지 않자 공연 참여자들로부터 불만이 쌓이고, 연습에도 지장이 생긴다.
이런 사태에 극단 대표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데...   두 번째 공연 중, 꽉 찬 객석에서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연출자가 짜증을 내는 장면에서 극단 대표가 개입해야 한다”, “배우의 몸을 만질 뻔할 때 나라면 이렇게 개입하겠다” 등을 제안한 관객이 직접 무대에서 연기를 해보지만, 상황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때로는 그것이 소란 속에 위축된 피해자의 심리에 대한 몰이해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문제 해결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성과 2024년 12월 1일, 도쿄의 공연장 자코엔지에서 공연 중인 토론연극의 ‘안티모델’ 장면. (제공-일본극작가협회 https://jpwa.org)     피해자의 심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구체적인 피해와 영향 알게 돼   연극이 끝난 이후에 하나사키 씨와 사카모토 씨에게 토론연극의 방법론과 효과에 대해 물었다.
  ‘안티모델’을 공동으로 창작하고 피해자 역을 연기한 사카모토 씨는 “첫 해는 모색 단계였어요. 준비 단계에서 괴롭힘에 의한 구체적인 피해와 피해 감정 등을 배우들끼리 공유했고, 공연에 의해 배우뿐 아니라 관객도 그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나사키 씨는 토론연극이 즉각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며,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관객이 제시한 대응책이 실제로는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롭힘은 밀실에서 일어나기 마련이어서,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여럿이서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해결을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상담할 수 없다’는 피해자의 심리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왜 잘 안될까를 모색함으로써 문제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이해가 깊어집니다.
그러니까 해결을 향해 원활하게 가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   사카모토 씨도 “괴롭힘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깊어, 피해자는 가해를 당하는 상황을 어떻게 넘길지 생각하기 마련이고, 주변에서 손을 뻗어줘도 잡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토론연극을 진행하면서 그러한 피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론연극을 통해 구체적인 피해와 영향이 보이기 때문에 연극계의 괴롭힘 방지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토론연극의 형식’보다는 ‘토론연극의 정신’   하나사키 세츠 씨는 지금까지 학교 교사의 노동, 가족 문제, 데이트폭력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연극을 해왔다.
“대본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직접 씁니다.
그리고 현장을 아는 사람은 오히려 배우보다도 사실적으로 연기합니다.
”라고 돌아본다.
  “토론연극의 주제는 뭐든 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토론연극의 형식 자체는 변혁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극우 입장에서도 사회비판 도구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흐름이 강해진 지금, 토론연극의 노하우 뿐 아니라 토론연극의 정신까지 잘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괴롭힘’ 피해 양상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도 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