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3년 만에 앵커 자리 물러나는 김현우 SBS 기자
김현우의 원칙 ‘내가 모르는 건 말하지 말자’, ‘쉽고 간결한 표현’
클로징멘트 자제 이유 “언론은 심판, 한쪽 편 들면 권위 사라져”
“리포트 위해 급히 넘겼던 사안들, 앵커하며 더 깊이 공부해”
▲ 김현우 SBS 앵커. 사진=SBS 제공.
2012년 뉴스 진행을 시작해 쉼 없이 달려온 김현우 SBS '8뉴스' 앵커가 18일 방송을 끝으로 앵커 자리를 떠난다.
그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13년간 앵커 생활을 이어왔다.
처음 8뉴스 평일 앵커를 맡았을 땐 '방송사 메인뉴스 남성 앵커 중 최연소', 떠나는 현재는 '역대 최장수 8뉴스 남성 앵커' 타이틀까지 가졌다.
SBS 동료들이 평가하는 그는 '안정감 있는 사람'이다.
생방송 중 각종 방송사고가 발생해도, 시청자들이 사고가 난 줄도 모르게끔 흔들리지 않게 대처한다는 평가다.
계획된 뉴스 진행표가 다 꼬일 정도로 기사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 뉴스센터에 고성이 오가도, 태연하게 뉴스를 진행해 기자들조차 사고를 몰랐다는 후문도 있다.
동료들은 그의 안정감이 주변 동료들도 중심을 잡을 수 있게 이끌어줬다고 전했다.
8뉴스 마지막 방송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후 미디어오늘은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김현우 앵커를 만났다.
그는 안정감의 비결에 대해 "쌓이고 쌓인 경험의 힘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10년 넘는 앵커 생활 동안 일어날 수 있는 방송사고는 다 접해본 탓에, '방송사고 매뉴얼'까지 만들어 놓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난리가 났지만, 시청자들은 날 보고 있으니 티를 내지 않고 아무 일 없는 척 해보자"는 다짐의 일환이다.
"모르는 건 말하지 말자"는 원칙으로 앵커 생활을 이어온 그는 "시청자에게 1을 전달하기 위해선 10을 알아야 한다.
10분짜리 방송을 위해 하루 정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고 간결한 앵커 멘트도 중요한 원칙이다.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대, 클로징멘트를 포함한 각 사의 앵커 멘트가 화제가 되는 흐름에도 그는 "스타앵커보단 뉴스를 스타로 만드는 앵커가 되고싶었다"며 주관적 의견 표출은 자제해왔다고 말했다.
"리포트 위해 급히 넘겼던 사안들, 앵커하며 더 깊이 공부" 그의 '앵커로서의 삶'은 주말 아침뉴스 '모닝와이드'를 진행하며 시작됐다.
당시 스포츠부 기자였던 김 앵커는 총선과 대선방송 진행을 계기로 2012년 모닝와이드 앵커를 맡았다.
그는 "앵커를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그때부터 기자로서 삶의 궤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모닝와이드 평일 앵커, 8뉴스 주말 앵커를 거쳐 2017년 5월부터는 8뉴스 평일 앵커를 연달아 맡으며 8년간 SBS 메인뉴스를 이끌었다.
▲ 2012년 주말 아침뉴스 모닝와이드를 진행하는 김현우 SBS 앵커의 모습. 사진=SBS 홈페이지 갈무리. 8뉴스 평일 앵커를 맡았을 땐 부담이 더 컸다.
그해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에 대한 책임으로 전임 앵커가 물러났고, 그 자리를 주말 8뉴스 진행을 맡고 있던 김 앵커가 갑작스레 채웠다.
30대 후반으로 당시 메인뉴스 남성 앵커로서는 최연소였다.
그는 "매일 밤 다가오는 뉴스 시간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며 "내가 그만큼 담아낼 그릇이 되는가 부담이 컸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인데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장기간 한 번도 쉬지 않고 뉴스 진행을 맡아온 그는 곧 미국 연수를 앞두고 앵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 '재충전의 시간'을 위해 신청한 관훈클럽의 언론인 해외 연수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돼 그의 하차는 이미 약 1년 전부터 결정된 사안이었다.
그는 마지막 방송을 하루 앞두고 "홀가분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매일 밤 답을 모르는 수험생의 심정으로 저녁 8시 생방송을 진행해왔다.
항상 얇은 칼날 위에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못하면 회사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어 혼자 뉴스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많았다.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겠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크다.
" ▲ 2017년 평일 SBS 8뉴스를 진행하는 김현우 SBS 앵커의 모습. 사진=SBS 홈페이지 갈무리. 그가 말하는 앵커는 "생각보다 외로운 자리"다.
부서 안에서 선후배들끼리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자와는 달리, 힘든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앵커만의 일이 있어서다.
그는 앵커를 '백조'에 비유했다.
"밖에서 보면 우아하고 고상해 보이는 자리이지만 물밑에서는 열심히 헤엄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앵커는 '회사의 간판'이라고들 하고 사고가 나면 회사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개인적 삶도 더 조심해야 한다.
혼자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자주 느꼈다"고 말했다.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뛸 시기, 오랜 기간 앵커를 맡으며 기자로서 아쉬운 부분은 없을까. 그는 "우연치 않게 이 길로 들어서 길게 앵커를 하다 보니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에 현장 취재를 못했던 점은 기자로서 아쉽다"면서도 "앵커를 하면서 스스로 많이 공부하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1을 전달하기 위해선 10을 알아야 한다.
10분짜리 방송을 위해 하루 정도 공부해야 한다"며 "취재기자 때 하루 리포트를 위해 급하게 넘겼던 것들을 앵커를 하면서는 더 깊게 볼 수 있는 사안들이 있었다.
8년 동안 앵커를 하며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는 점이 뿌듯하면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현우의 원칙 '내가 모르는 건 말하지 말자', '쉽고 간결한 표현' 뉴스 진행을 위한 앵커 멘트는 매일 눈을 뜨는 아침부터 계속해 뉴스를 보며 준비한다.
SBS와 타사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오후 전략회의에 참여해 뉴스 진행표 얼개를 짠다.
잘 모르는 사안이 있으면 취재기자에게 물어봐 숙지한다.
오후 5시경 10분 남짓의 메이크업 과정이 끝나면 8시 뉴스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해 직접 앵커 멘트를 쓴다.
"매일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심정으로 앵커 멘트를 쓰는데 쪽지시험 같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나오고 매일 정답이 없다.
내가 오늘 15개의 리포트에 앵커 멘트를 한다면, 과연 제대로 푼 정답이 몇 개가 있을까 생각한다"는 심정이다.
▲ 김현우 SBS 앵커. 사진=SBS 제공. 앵커 멘트를 쓸 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내가 모르는 건 말하지 말자"다.
그는 앵커의 역할을 여러 사람이 일렬로 서 한 명씩 다음 사람에게 몸짓으로 단어를 설명하는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 빗댔다.
"처음에 내가 정확하게 알면 다음 사람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맥락과 핵심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전달하면 받는 시청자 역시 '저게 뭐지' 싶게 된다.
그건 나쁜 뉴스라고 본다.
" 쉽고 간결한 표현도 주요 원칙이다.
기자들의 리포트를 시청자에게 대표로 전달하는 만큼, 어려운 단어를 최대한 걷어내고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자는 취지다.
그는 '내가 최근 한두 달 사이 주변 사람과 대화하면서 이 단어를 쓴 적 있나' 고민해본다고 했다.
그는 "만약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면 그건 사람들이 안 쓰는 말이고 모르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기본 개념도 최대한 표현을 바꿔줘야 듣기 편하다"며 "영어 듣기평가에서도 쉬운 문장인데 이상한 단어를 하나 끼워 넣어서 어렵게 만들지 않나. 쓸데없고 어려운 말들을 최대한 걷어내는 게 좋은 앵커 멘트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청자들이 듣기평가 백점을 맞을 수 있게 하자는 게 내 원칙"이라고 했다.
클로징멘트 자제하는 이유 "언론은 심판, 한쪽 편 들면 권위 사라져" 뉴스 진행자가 클로징멘트를 통해 논평과 해설을 곁들이고, 각 사 앵커의 클로징멘트가 자주 화제가 되는 시대다.
이러한 흐름에 비해 김현우 앵커는 클로징멘트에서 의견 표출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스타앵커보단 뉴스를 스타로 만드는 앵커가 되고싶었다"고 했다.
그는 "앵커의 권리와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언론은 공정성에 기반해야 하는 데 개인의 의견을 내는 것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정파성과도 연계돼 있다.
언론은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자칫 팬덤화되면 본인 편에 듣기 좋은 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언론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존재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나도 (의견을 표현하는 클로징멘트를) 해봤지만 어느 순간 클로징을 위한 클로징이 되더라"라며 "언론은 독립적이고 공익적이어야 한다.
한쪽 편을 드는 순간 심판의 권위는 사라진다.
가능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에 남는 클로징멘트는 있다.
2018년 1월3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까 SBS도 빼앗겼다"고 발언하자 그는 곧바로 당일 클로징멘트에서 "정치 권력이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늘 홍준표 대표가 'SBS를 빼앗겼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한국당 소유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일갈했다.
▲ 2018년 1월3일 SBS 8뉴스 클로징멘트를 하는 김현우 앵커. 사진=SBS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정확한 사실관계와 맥락을 전해주는 사람'. 김현우 앵커가 강조한 앵커의 기본 역할이다.
그는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반드시 알아야 할 일들을 보여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숙의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거기에 의견이 보태진다면 과연 공정한 논의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다.
최근 들어 정치가 갈등을 부추긴다고 하지만 언론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갈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부추기고 편을 가르는 것에 대해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견을 드러내는 걸 자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며 뉴스 형태와 유통 방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생각하는 '뉴스'의 개념조차 모호한 가운데, 방송사도 다양한 형태의 뉴스를 시도해왔다.
많은 변화를 거치며 뉴스를 전달해 온 김 앵커는 "중요한 건 내용"이라며 "형식이 내용을 잠식하는 뉴스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가 아니고 무엇을 전달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무조건 내용이 먼저고 형식은 다양할 수 있다"며 "다만 형식 면에서 뉴스도 일종의 서비스가 돼야 한다.
뉴스는 더 친절해야 하고 언제든 다시 와도 늘 기대하는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만큼이 돼야 한다.
그런 지점에서 형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앵커는 권력자 아닌 시청자 눈치 봐야" 결국 언론이 바라봐야 하는 건 '뉴스 이용자'다.
김 앵커는 "앵커는 권력자가 아니라 시청자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일상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시청자 반응과 여론을 파악한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이나 뉴스가 끝난 후 저녁에도 가급적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심사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일부러 주말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보기도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공부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8년 간 매일 비워냈다"는 그는 이제 해외 연수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 한다.
"1년 연수 뒤 다시 SBS 보도본부로 돌아와 회사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며 웃어보인 그는 "재충전을 하고 와서 SBS 뉴스가 다시 더 잘될 수 있게, 1등 방송을 지켜나갈 수 있게 더 열심히 뛰어보자는 게 지금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장의 목표는 '평범한 일상'이다.
그는 "2005년 회사에 들어오고 20년 동안 일만 하며 살았다.
최근 8년은 매일 저녁 생방송을 하니까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다"며 "아이가 어린데 아빠가 해야 할 일을 못해 미안한 부분도 있다.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부분을 더 많이 채워주고 싶다.
아이 유치원이 끝나면 마중도 나가고 가족끼리 저녁을 먹으러 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혀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출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