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길 경제부 차장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에 나오는 주인공 걸인이 귀한 대양(大洋)을 얻는 과정은 짧게 묘사됐지만 지난했을 것이다.
동전 1닢 주는 이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48닢의 동전을 모아 각전 1닢으로, 다시 각전 1닢을 얻는 과정을 6번 반복한 후에야 겨우 은전 하나로 바꿀 수 있었다.
여섯 달이 걸려 은전을 손에 쥔 그에게 화자가 어디에 쓰려는지 묻자 들려준 위의 대답은 수필의 마지막 문장이 돼 여운을 남긴다.
상황과 대상은 다르지만 지금 한국에서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은 은전 한 닢을 손에 쥐려는 수필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지방에서 수도권, 수도권에서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3구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굳건한 피라미드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열망은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급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벼락거지’가 된 이들의 위기의식과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등이 맞물린 결과다.
물론 그 전부터도 갈아타기를 통한 ‘상급지’로의 이동이라는 흐름은 있어 왔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서울 전체 집값이 크게 뛰면서 똘똘한 한 채와 나머지의 가격 차가 커졌고, 윤석열정부 들어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됐다.
그 결과 피라미드 상층부는 첨탑처럼 더 뾰족해지며 높아지는 중이다.
멀어져가는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이 가라앉을 법도 한데 올 초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번복을 둘러싼 해프닝을 보면 그 수요는 언제든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활화산이나 마찬가지다.
지난달 군사작전처럼 발표된 6·27 대출 규제는 급격히 달아오른 부동산 시장 열기를 삽시간에 식히는 중이다.
전격적으로 높은 수위의 대책이 발표돼 반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정부가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이들이 거액의 대출을 일으켜서라도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고 했는데 그 기회마저 빼앗겼다는 것이다.
예상 밖 규제가 급작스레 적용되는 바람에 황망해진 개인이 있겠지만 한 발 물러나 생각하면 너도나도 똘똘한 한 채의 굴레를 뒤집어쓴 사회가 바람직할 리는 없다.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열망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다른 지역 ‘키 맞추기’로 이어져 전체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는 이들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다시 더 높은 사다리를 놓아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특히 그 사다리가 빚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회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과 위험 역시 적지 않다.
지난 1분기 국내 가계부채는 1928조7000억원으로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주택담보대출에 크게 빚진다.
규모가 주는 위압감과 달리 주담대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은 대출이다.
은행 입장에선 양호한 대출에 가깝다.
그럼에도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는 한국에서 똘똘한 한 채를 필두로 한 부동산에 돈이 묶이는 것은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개별 가계도 원리금을 갚느라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사실 똘똘한 한 채는 수필 속 은전 한 닢과 달리 맹목적이지만은 않다.
그만큼 효용이 크다.
교육, 입지, 미래 가치에서 투자할 만하기 때문에 능력만 되면 누구나 손에 쥐려 한다.
그런 이유로 수요를 낮추거나 분산시킬 수 있는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맛보기’에 불과하다고 한 6·27 대출 규제 이후 나올 대책들이 그 세기만을 더하지 않고 세심해져야 하는 이유다.
[뉴스룸에서] 은전 한 닢과 똘똘한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