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산업1부 기자
AI, 촌철살인 광고문구까지
만드는 시대… 활용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 생각해야
2년 전 챗GPT를 처음 접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AI 프로그램의 정확도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뻔히 아는 것들, 가령 ‘○○○ 기자에 대해서 설명해줄래?’ ‘여의도역 인근에 방이 있는 식당을 몇 개 추려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입력해 봤다.
미국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이 한글 질문에 바로 응답하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내용은 형편없었다.
터무니없는 내용이 껴있거나 실재하지 않는 식당을 소개하기도 했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업무에 활용한다는 생각은 한동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다시 이용해본 챗GPT의 정확도는 놀라운 수준이다.
식당을 추려 달라고 할 때 적어도 실재하지 않는 식당을 소개하지는 않을뿐더러 답변의 근거까지 포함했다.
이제 AI 프로그램을 여행 계획이나 모임 장소를 찾는 수준의 일상뿐 아니라 투자 보고서 작성, 비즈니스 레터 작성 등 업무에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기자의 업무에서도 자잘하게 AI의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인터뷰나 기자간담회 내용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AI에게 맡기면 1~2분 만에 텍스트로 정리된다.
처음 이런 서비스가 출시됐을 때는 정확도가 형편없어 결국 다시 수작업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거의 손댈 부분이 없을 정도다.
한발 더 나아가 주요 내용을 요약해 핵심만 짚어주는 기능도 지원한다.
기자들이 취재 내용을 공유하고 기사를 전송하는 언론사 집배신 프로그램에도 이제는 기사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그에 걸맞은 제목 후보들을 추려내는 기능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텍스트를 요약하고 핵심을 추리는 작업은 교육을 받고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는데, 머지않아 그걸 AI가 제법 그럴싸하게 해낸다 생각하니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가 교차한다.
골치 아픈 중간 작업을 AI에게 맡기니 분명 일하기가 편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해냈을까’ 싶은 촌철살인의 신문 헤드라인이나 광고 문구를 앞으로 사람이 아닌 기계가 고안해낸다 상상하니 단순 노동뿐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마저 AI에게 넘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든다.
이 모든 게 테크 기업들의 AI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 채 5년도 되지 않아 나타난 변화다.
기술의 파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주변을 엄습해 왔다.
지방에 제법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도 최근 “오래 일한 비서가 갑작스럽게 그만둔 뒤 새로 비서를 뽑을까 하다가 그냥 말았다”고 말했다.
AI 프로그램들을 활용해 일정 관리나 자료 검색 등을 하니 비서가 굳이 필요 없더라는 거다.
AI 비서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갑자기 그만두거나, 임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여전히 AI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수없이 많고, 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고용 관계 법령이 AI의 일자리 침탈을 상당 기간 막아줄 거다.
하지만 그 법령과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입을 피해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AI 덕에 무의미한 잡일이나 중간 과정에 들여야 하는 에너지는 상당히 줄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하는 사람 이야기다.
아르바이트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20·30대 청년이 지난달 기준 70만명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AI 기술의 발전은 일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젊은이를 늘리면 늘렸지, 줄이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요컨대 AI는 똑똑한 사람이 ‘똑똑하지 않은’ 일에 투입할 에너지를 똑똑하게 쓸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줄 수 있지만, 애초 AI를 활용해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더 뒤처지는 양극화를 초래한다.
이미 많은 기업이 임직원의 챗GPT 같은 AI 프로그램 이용료를 지원하며 생산성을 키우고 있다.
AI를 통한 산업 재편과 성장동력 마련 등 청사진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이미 시작된 ‘AI 양극화’ 문제도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가리사니] 보이지 않는 양극화